헛수고하지 않는 방법 (마7:24-27)

두가지 인생(무너지는 인생, 무너지지 않는 인생) –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다는 사람 중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말씀을 듣는 것까지는 같으나 들은 대로 행하는 사람과 행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행함의 여부에 따라 무너지는 인생과 무너지지 않는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게을리 하면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모순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성공을 원하는 것만큼 이기적인 것도 없다. 

두 가지 성공 – 본문에 두 가지 성공이 나온다. 지상의 건물이 완성된 보이는 성공이 있고 지하의 기초가 완성된 보이지 않는 성공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보이는 성공을 성공의 전부로 알고 있지만 믿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성공을 진정한 성공으로 안다. 보이는 성공이 무너지지 않는 성공이 되려면 보이지 않는 성공이 있어야 가능하다. 보이는 성공이 육신적인 성공이라면 보이지 않는 성공은 영적 성공이다. 

두 가지 계획 – 성공은 계획에서부터 결정된다. 계획의 완전성 여부가 성공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계획의 불완전은 성공의 미완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전한 성공을 위한 완전한 계획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삶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세상 사람도 성공이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영구적인 보장이 없는 일시적인 성공이다. 영적 성공이 영원한 성공이며 무너지지 않는 성공이다. 

두 가지 계획 – 여호와 이레는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미래를 준비하시는 축복을 말한다. 모든 믿는 자를 위한 예비하심이지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사람에게 해당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상관이 없는 삶이 된다. 광야에서 불(구름)기둥을 따라가는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예비하시지만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예비 하심과 무관한 삶이 되는 것이다. 

두 가지 기준 – 하나님의 계획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자기 기준대로 산다면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딪히기 시작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충돌하는 것이다. 믿음 이전에 갖고 있던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 들여야 것이다. 

두 가지 기준 –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준과의 충돌이 없다. 믿는 사람에게만 있는 필연적 문제이다. 믿지 않는 자의 기준은 멸망의 기준, 저주의 기준이다. 그것을 구원의 기준, 생명의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 특히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 대제사장들이 부딪힌 문제가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의 충돌이었다. 율법 행함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의와 충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받아 들이고 자기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두 가지 기준 – 신앙생활에서의 문제는 피차 견해 차이의 쟁점을 어떤 의도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는것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 사람끼리의 의견 대립에서 옳은 의견 좋은 의견이 결정되어 시행한 결과가 과연 얼마나 성공적이었나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실패가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훌륭한 의견과 아이디어라고 해도 결국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달려 있다. 결정적인 것은 좋은 의견이냐 나쁜 의견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이다. 

두 가지 동기 – 갈1:10, 살전2:4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려 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온다. 베드로와 사도들 역시 복음 전파에 대한 종교 기득권 세력의 핍박에 대하여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라(행4:19)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너희가 판단해 보라(행5:29)고 종교 재판 석상에서 담대히 말한다. 

두 가지 동기 – 기독교의 타락의 다양한 현상 중에 하나가 인본주의다. 사람이 예수를 대신하여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사람의 기준이 성경의 기준을 대신하는 것이다.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고 사람이 선호하는 주제와 내용이어야 하는 사람이 중심의 교회가 된 것이 종말의 예수가 없는 교회(성도)이다. (계3:20)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가 문 밖으로 밀려난 교회이다. 

사역과 역사의 근원 – 사도들의 사역과 그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역사에 대하여 제재하는 기득권 세력들에게 존경받는 교법사 가말리엘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아무도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행5:38-41) 교법사의 말이 정확한 말이다. 그는 이미 지난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보는 것, 사람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보는 것을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