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4:9-10)
역대기 상하 기록 목적 – 역사서를 기록하며 족보를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 야곱, 열두 지파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기독교 신앙은 철저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대기를 기록한 목적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새로운 세대의 신앙 계승과 재무장을 위한 것이었다. 황폐된 조국에 돌아와 하나님의 진노의 준엄함을 확인한 후손들은 에스라의 인도로 수문 앞 광장에서 철저한 회개 운동이 일어난다.
신앙의 계보 – 역대기상은 1장에서 9장까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족보를 소개한다.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거쳐 야곱과 열두 지파의 족보를 기록한다. 특이한 것은 2장부터 열두 지파를 소개하면서 순서로 보면 네번째인 유다 지파를 선두에 소개한다. 동시에 유다 지파 족보에 이방인으로서 유다 지파에 편입된 족속을 소개한다. 그 중에 하나가 갈렙과 레갑 족속이 속한 겐 족속이다. 이방인을 제한하는 혈통 중심의 복음이 아니라 만민을 향하여 열린 복음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야베스의 등장 – 유다 지파 족보를 소개하는 중에 ‘야베스’라는 인물의 등장은 상당히 뜻밖의 일이다. 등장 이유가 분명치 않고 족보상에서 전후 연결이 안되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소개는 9절 단 한절이다. 사람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잘 아신다.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함이더라’
야베스 이름의 뜻 – 이름의 뜻은 어머니의 고백처럼 ‘고통’ 또는 ‘슬픔’이라는 의미이다. 인생을 살아보면 슬픔과 고통을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다. 고통은 인생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기회가 된다. 인생을 아는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름은 통상적으로 아버지가 지어주는 관습을 벗어나 어머니가 지어주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를 말하며 불행한 환경 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왜곡된 인생을 살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영적 연단으로 성숙한 신앙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도 대상자와 기도 당사자 –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기도의 당사자인 야베스를 소개하시는 장면이 9절이다. 기본적으로 기도 대상이신 하나님은 기도의 당사자인 나를 잘 아신다.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신다. 야베스는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소개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신다. 그 하나님께서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는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이다.
존귀한 자 – 존귀의 기본 의미는 ‘무겁다’이다. 의역으로 존귀, 영화, 영광이지만 무거운 짐을 뜻한다. To Heavy이다. 짐은 두 종류가 있다. 능동적인 짐, 피동적인 짐. 적극적인 짐, 소극적인 짐. 상급적인 짐, 처벌적인 짐. 영광스런 짐, 비극적인 짐. 잘못없는 짐, 잘못있는 짐. 어떤 형태의 짐이든지 짐 앞에서의 자세와 반응이 나 자신을 증명한다. 나의 인격, 성품, 습관, 영적 수준, 믿음의 수준, 가치 기준등을 증명한다. 상황이 나의 운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존귀한 자 – 인생은 자신의 수준이 모든 관계에서 표현되고 증명된다. 사람 관계에서 하나님 관계에서 주어진 임무에서 그의 성실성 정직성 책임감 충성심이 증명된다. 상대방의 잘잘못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것이 내 인생의 성공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내 인생은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다. 설령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도 그 일에 대한 나의 성실과 정직, 충성은 남의 행위가 아니라 나의 행위이다. 나의 행위가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과 삶의 내용 – 야베스의 기도를 소개하면서 먼저 9절에서 야베스라는 사람에 대하여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도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기도 내용보다 기도자의 삶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기도자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인정하심이 가능할 때 기도자의 기도가 받으실만한 기도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도 행위 자체보다 실질적인 삶의 내용을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이 가능한 삶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의를 이루는 기도가 될 것이다.
기도의 목적 – 삶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기도의 목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소유 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존재 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구원 없는 삶은 소유 지향적 사람을 살지만 구원 있는 삶은 존재 지향적 삶을 산다. 구원받은 사람의 기도 목적은 육신적 목적보다 영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도가 될 것이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기도는 세상적이고 육적인 목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보물의 방향은 목적의 방향 – 마6:19-21에서 보면 보물을 어디에 쌓느냐 하는 문제가 나온다. 보물을 땅에 쌓는 사람이 있고 하늘에 쌓은 사람이 있다. 성경은 분명히 너희를 위하여 그렇게 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고 한다. 보물의 방향은 목적의 방향이며 그 목적은 인생의 가치와 보존과 보장을 결정한다. 목적이 나 자신을 존귀한 인생인지 아닌지를 증명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 삶이 가능하기도 하고 짐승의 삶이 가능하기도 한 것이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