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37-42)

심고 거두는 법칙은 창조 원리 – 창조 원리는 피조물이 인위적으로 변경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이고 절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피조물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에 거부가 불가능하다. 믿음을 심어 구원을 거두고 순종을 심어 축복을 거두고 불순종을 심어 저주를 거두고 불신앙을 심어 멸망을 거둔다. 만물이 심고 거두는 원리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다.

존재적인 씨(인간) – 본문에 두  가지 씨가 등장한다. 좋은 씨와 가라지이다. 좋은 씨를 뿌린 자는 인자 곧 예수님이며 가라지를 뿌린 자는 원수 마귀이다. 세상에는 뿌린 자의 씨에 의하여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존재한다.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여 두 가지 씨가 뿌려졌고 뿌려지고 있다. 뿌려진 씨에 따라 천국의 아들로 사는 자가 있고 악한자의 아들로 사는 자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주어진 임무를 감당하고 악한 자의 아들로 주어진 임무를 감당하고 있다. 

가라지를 뿌리는 때 – 좋은 씨가 뿌려지는 장소와 가라지가 뿌려지는 장소가 다른 장소가 아니다. 같은 밭에 곡식 가운데 원수가 가라지를 뿌리는 것이다. 뿌리는 때가 있다.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다는 것이다. (마13:25) 잠을 자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영적인 잠을 말한다. 예배 생활이 잠들고 기도 생활이 잠들고 말씀 생활이 잠들고 주신 사명을 감당치 않고 게으름 필 때에 가라지가 뿌려진다. 바쁘고 시험 들고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할 때 가라지가 뿌려진다. 

씨의 정체 – 씨의 정체는 두 가지다. 영과 생각이다. 마귀에 의하여 생각이 심어지고 영이 심어진다. 사울에게는 악신이 임하고 다윗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임한다. 악신이 임한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한다. 다윗을 미워하여 죽이려 한다. 여호와의 신이 임한 다윗은 사울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고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육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말씀을 행할 수 없고 행하지도 않는다. 

문제 처리방식 – 하나님의 아들과 악한 자의 아들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다. 오천명 양식 문제 해결에 있어서 빌립은 2백 데나리온의 비용이 필요하고 그것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믿음으로 드린다. 고기잡이 실패가 인간의 수단 방법의 한계에 의한 것을 인정한 베드로는 믿음으로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간다. 메추라기 사건에서 소떼 양떼를 총동원해도 불가능하다는 모세의 말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고 반문하신다. 계산방식과 믿음방식이 있다.  

대인 관계 방식(원수 관계) –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도 있다. 원치 않지만 원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원수를 대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사람과 악한 자에게 속한 자의 대응 방식이 다르다. 악한 자에게 속한 자는 악한 방식으로 같이 미워하고 보복하고 악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원수를 사랑한다. 마귀는 악하게 반응하게 하여 악한 것을 심게 하고 하나님은 선하게 반응하여 선한 것을 심게 한다. 

손해 발생에 대한 반응 방식 – 인생에는 정당하고 당연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이고 억울한 일도 많다. 당연히 세상 사람은 억울한 일에 대하여 법적 대응을 통하여 보상 청구와 권리 행사를 한다. 내 자신이 잘못이 없는 경우가 있고 잘못이 있는 경우가 있다. 잘못이 없는 경우 믿음의 사람의 대응은 달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억울한 경우 주를 생각하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 물질적인 손해와 아울러 인격적 손해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여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래 대상에 대한 자세 – 사회적 활동에는 필수적으로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인간 관계는 이해관계를 위한 관계가 된다. 이해 관계는 일방적인 경우가 아닌 상대적인 이해관계에서 약속 위반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법적 요구를 하게 되지만 문제는 상대가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문제다. 고의적인 경우도 있고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이때 하나님의 원리가 있다.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받는 것 방법이 있고 하나님께 받는 방법이 있다. 

뺏기는 상황과 베푸는 상황 –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뺏기는 것과 같다. 어차피 받을 수 없이 뺏기는 결과가 초래 될 때 베푸는 경우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상황과 상태는 바꿀 수 없으나 의도나 동기는 바꿀 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상대에게 채무 이행을 강요하려던 것을 채무를 탕감해주어 베푸는 결과가 되게 하는 것이다. 뺏기는 것은 심은 것이 아니지만 베푸는 것은 심는 것이 된다. 베푸는 결과가 되게 하여  손해로 끝날 것을 심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심는 기준의 확인 – 필연적으로 심고 거두게 된다. 매사에 심는 기준을 확인하는 것이다.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무슨 일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열매를 보증하시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