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23-26)
무서운 것이 있는가 없는가 – 무서움의 유무는 문제의 유무에 있다. 무서움의 원인이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 대전제가 있다. 문제의 필연적 존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없는 사람은 단 하나 무덤에 있는 사람뿐이다. 문제는 두려움이 문제가 된다. 마귀는 두려움으로 인생을 지배한다. 두려움은 마귀가 인생을 지배하는 수단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시며 무서움의 종 노릇하는 모든 인생을 놓아주려 하심이다(히2:14-15)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들 – 모세의 부모는 생명을 위협하는 바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고 모세는 권력이 보장된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의 길을 선택했다. 또한 모세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상 쾌락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우한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권력의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갖 고난과 조롱과 모욕을 받는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다.
결심이 아닌 체험이 확증이 된다 – 생명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않고 아무 힘도 없고 모든 것을 상실한 종의 길을 무서워하지 않고 선택하는 결단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담대한 결단과 애굽의 온갖 보화를 포기하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는 결단은 단순한 결심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성적 결단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영적 체험에 의하여 영적 지배에 달려 있다. 담대함에 잡힌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두려움에 잡힌 사람은 불가능하다.
모세의 운명 – 모세의 삶은 드라마 이상으로 드라마틱한 인생이다. 출생이 사망이 되는 운명으로 태어났다. 남자 아이는 출생과 함께 죽어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다. 출생과 함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일강에 버려졌다. 그야말로 운명을 하늘에 맡겼다. 기적같이 공주에게 발견되어 하루아침에 공주의 아들로 입적되고 왕의 가족이 된다. 그러나 어느 날 생각지 않게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왕의 가족의 신분에서 도망자 신분으로 전락한다. 양치는 목동으로 하염없는 40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모세의 운명 –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목동으로 살던 어느 날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백성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게 된다. 양치는 목동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메시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모세의 손에 잡혀 있던 지팡이 처럼 하나님의 손에 잡힌 사람이 된다. 하나님 손에 잡힌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다. 신앙 생활은 내가 하나님을 사용하느냐 하나님이 나를 사용 하시느냐의 문제다. 하나님께 잡힌 사람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
하나님께 잡힌 사람의 특징 – (막을 수 없는 사람)모세가 하나님께 붙잡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애굽으로 갔을 때 바로 왕을 비롯하여 모세의 길을 막을 자가 없었다. 사43:13에서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과연 하나님을 막을 사람이 있는가 아니 천지만물 가운데 누가 창조주를 막을 수 있는가. 모세는 바로 왕에게 선포한다. “내 백성을 보내라!!!” 단신으로 바로 왕에게 나아가 명령하듯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다. 결국 바로는 하나님 앞에 굴복한다.
하나님께 잡힌 사람의 특징 –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히11:38에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죽음도 겁내지 않는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도저히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다. 사43:1-2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은 물 가운데서 불 가운데서 침몰치 않고 타지도 않는 존재이다. 물불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다.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직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외에는 그를 당할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잡힌 사람 – (없는 것이 없는 사람) 요15:5,7에서 “네가 내 안에, 내(말)가 네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공급자가 되신다. 모든 공급은 하나님에 의하여 진행 되고 있다. 하나님의 공급은 하나님의 공급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공급 원칙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이다” 무엇이든지라는 표현 속에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얼마든지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의 공급은 제한이 없다 –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경륜을 펼치신다. 하나님은 무제한적 공급이 가능하시다. 프로젝트의 크기에, 비전의 규모에, 필요와 수요의 크기에, 대상과 범위에 제한이 없다. 문제는 쓰임 받는 사람의 SIZE가 하나님을 제한하게 된다는 점이다. 믿음의 크기, 순종의 크기가 중요하게 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의 조건 – 일차적으로 그릇의 크기가 중요하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의 Scale에 합당한 크기여야 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어있는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어있지 아니하면 크기의 의미가 없다. 얼마나 크냐 보다 비어있는 상태가 중요하다. 그릇은 담아 보아서도 크기를 알 수 있지만 쏟아보면 정확하다. 근본적으로 깨끗이 비어져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