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7)

삶의 두가지 영역 – 삶에는 두가지 영역이 있다.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육적 영역과 영적 영역, 유한 영역과 무한 영역, 현재 영역과 미래 영역, 인간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 인간은 두가지 영역을 살아간다.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경고 – 미래가 보이지는 않으나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만 한다. 미래는 미래에 준비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현재만 가능하다. 현재만이 미래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다. 미래를 해결한 삶이 있고 해결 못한 삶이 있다. 짐승은 현재만을 위해 살지만 인간은 미래를 위해 산다. 현재가 전부인 삶이 있고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삶이 있다. 

미래의 필연적 도래 – 보이지 않는 미래는 4가지 영역이 있다. 미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 특징을 갖고 있다. 반드시 필연적 현실로 다가오고 부인할 수 없이 필연적으로 목격하게 되고 동시에 나 자신이 필연적 당사자가 된다. 하나님의 경고는 불분명한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다. 확고한 계획의 실행에 앞서 준비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볼 수는 없으나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영의 세계를 볼 수는 없으나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계획된 미래 –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미래가 있고 인간의 계획에 의한 미래가 있다. 노아에게 예고한 미래는 하나님의 계뢱에 근거한 미래이다. 우리 입장에서 지난 과거가 된 홍수 사건은 정확히 예정된 미래 사건이었다. 당장에는 확실한 계획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에 근거하지 않으면 보장 없는 뜬구름과 같다. 하나님의 계획은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고 성취된다. 인류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시작되고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끝나게 된다. 

무한의 미래 – 시간에 예속된 유한 시간적 인생이 유한의 기간이 끝나면 시간을 벗어난 무한의 시간이 시작된다. 유한의 시간은 무한의 시간에 비하여 중요성이 덜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무한은 유한의 기회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무한 시간에 비하여 유한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찰나에 영원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하며 던진 성경이 핍박하던 군인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조선에 복음이 전해지는 기회가 된다. 

환난의 미래 – 홍수 심판이라는 대환난이 예고된 것처럼 종말 시대에 역시 7년 대환난이 예고 되어있다. 환난은 추수하는 종말 시대의 필연 과정이다. 환난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는 것이다. 강력한 환난이 확실한 알곡과 쭉정이를 정확히 분리하게 된다. 평상시 평안한 상황에서는 알곡과 쭉정이를 정확하게 구별하기 쉽지 않다. 종말 시대에 전무후무한 환난이 있게 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마지막 추수 작업이 대환난인 것이다. 

끝의 미래 – 인류 역사적으로 인생 개별적으로 최종적 마감이 온다. 예수님 재림은 인류 역사의 최종 마감이 된다. 하나님에 이하여 창조로 시작된 인간 세계가 예수 재림으로 최종적으로 끝나는 것이다. 끝은 시작 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끝은 시작에서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준비에 의해서 끝이 해결된 미래가 되고 준비에 의해서 해결되지 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 끝은 결과이다. 결과가 미래가 오기 전 준비상태를 증명해준다. 

현세의 끝이 내세의 시작이다 – 예수님의 재림에 이한 종말이 현세의 최종 마감이 되고 영원한 내세가 시작된다. 창조하신 세상은 시작 때부터 시한이 정해진 숙명을 살았던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면서 역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수명의 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이 되는 것이다. 영혼을 가진 인생은 결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일시적인 육신의 기간이 영원이 시작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끝은 세상이 아니다 – 영원과 연결하여 평가해야 한다. 영생의 영원이 있고 영벌의 영원이 있다. 이 땅에서의 짧은 기간에 영원을 결정하게 된다. 영생이 결정되느냐 영벌이 결정되느냐에 의하여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육신적 성공이 얼마든지 영적으로 실패가 될 수 있다. 육신적 축복이후 타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명기에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에 살게 될 때 잊지말라고 하신 것이 육신적 형통이 육신적 실패와 불행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미래에 있다 – 현실이 중요한 이유는 현실의 성공이 아니라 미래의 성공 때문이다. 미래는 유한한 시간이 아닌 무한한 시간의 성공과 실패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구원이 확실한 인생이 성공한 인생인 이유는 영원한 천국의 미래가 확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실에서 구원이 확보되지 않은 인생은 영원한 실패자이다. 영원한 지옥이 확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실패자인 것 같으나 미래의 성공자가 있고 현실에서 성공자인 것 같으나 미래의 실패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