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인생에 불행한 순간이 다가 올 때가 있다. 최선을 추구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놓여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음악가의 생애도 다르지 않다. 최악의 장애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베토벤의 모습은 경이롭다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는 음악가에 있어서 청력의 의존도는 가히 절대적이다. 음악가에게 있어 생명과 같은 청력의 상실은 모든 것의 상실과 같은 것이다. 

베토벤은 한창 잘 나가던 20대에 청력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자신의 믿을만한 강력한 무기가 사라진다면, 누가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청력이 점점 나빠지자 베토벤은 음악가의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에 죽음을 결심하고 유서를 쓴다. 그러나 그는 유서를 써 내려가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얼마나 어마 어마한지 알게 된다. 음악에 대한 특별한 열정이 청력 상실의 절망을 뛰어넘게 한 것이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더라도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육신의 청력 상실이 진행될수록 그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육신의 청각으로 들을 수 없었던 영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교 대신 독서와 사색을 즐겼으며, 특히 셰익스피어나 칸트, 괴테, 쉴러 등 인문학과 철학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음악적 재능의 계발보다 인간의 내면에 집중할수록 그의 음악도 더욱 깊어지며 그 차원이 달라져 갔다. 

그는 더 이상 웃고 떠드는 유행의 음악이 아닌 삶을 돌아보고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음악을 창작하기에 주력했다. 베토벤은 비로소 음악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청력 상실로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연을 소리로 표현했으며, 눈으로 느낄 수 없는 풍경의 소리를 묘사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었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사람들은 대자연의 위대함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은 희로애락이 점철된 인생의 내면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경이로움 까지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청력 상실 후 그가 만든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으며, 교향곡 9번 ‘합창’은 인간이 가진 희로애락을 넘어 신에 대한 경외와 기쁨을 보여 주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관객 뿐 아니라 같은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곡가들은 눈이 호강하고 귀가 호강하는 음악보다는 마음이 동요되고 가슴이 움직이는 곡을 쓰기 시작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의 작품은 돈벌이가 괜찮은 그저 가벼운 음악이 대부분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청력 상실은 베토벤 인생에 있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청력 상실 덕분에 그에게서 위대한 음악이 만들어졌다. 위대한 일은 처절한 고난에서 탄생 되어 지는 것이다. 베토벤 음악의 장엄함은 그가 고난 속에서 체험한 신의 위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고난이 없었다면 창조주의 신비한 세계를 몰랐을 것이다. 그의 청력 상실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은총이었다. 

그의 청력 상실은 원망과 불평의 조건이 아니라 고맙고 소중한 은총이다. 그가 죽음을 택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마음 속에 강렬한 열망을 주셔서 죽음 대신 음악을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위기가 찾아온다. 그 위기가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고, 우리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이 들면 버텨 보자는 생각으로 참고 기다린다. 

그러나 평생의 짐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불행도 내가 가진 불행에 비하지 못할 만큼 하찮은 존재가 되면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존재로 전락한다. 바람인지 짐인지 중요 하지 않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나에게 보물이 될 수도 있고 혹은 폭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불행만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행과 행복은 동시에 찾아오는 법이다. 아니 모든 기회가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불행만 지속되는 삶이 없고 행복만 지속되는 삶이 없다. 불행의 기회와 행복의 기회가 함께 존재한다. 위기 속에 분명 해답이 있는 법이고 그 해답을 얻는 순간 우리는 고통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뀐다. 베토벤은 난청을 자신에게 최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난청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더욱 빛나게 했다. 최대 위기가 그의 삶과 음악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이다. 

청각 장애가 외부와 단절되는 불행이 되었으나 내면을 향하는 통로가 되었다. 소홀했던 내면의 세계와의 소통이 열린 것이다. 세상적 소음이 차단되고 영적 세계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음악에 영적 소리가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영적 존재로 지어졌다. 육적 청각도 열려야 하지만 영적 청각이 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