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 이 표현은 바울의 고백이다.<고후1:8-9> 한마디로 절망이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말씀한 환난이었을 것이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고난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마음에 사형선고 받은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인생에는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의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 순간들 이야말로 축복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과정을 통과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고, 또 모함으로 감옥까지 갔을 때,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 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 속에 길을 숨겨 놓으셨다. 아니 그 절망 상황이 길이었다. 노예로 팔려가는 것이 길이었고 감옥에 가는 것이 길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고 과학을 초월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우리가 못하면 하나님도 못하시고, 우리가 불가능하면 하나님도 불가능하고, 의사가 못 고치면 하나님도 못 고치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면 하나님도 불가능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불신앙이 절망의 원인이다. 불가능이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이 문제다.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고백한다 “그가 이 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1:10) 과거에 건져주신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현재에도 건지실 것을 믿고, 미래에도 건져 주실 것을 믿는다. 믿는 자는 절망 속에도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만 의지한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실력이 모자라서 가진 것이 없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운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장 큰 실패 원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죽음에서 살았는가? ‘여호와여 구하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통곡하며 하나님만 의지했다. 아사왕은 구스사람 세라가 100만명의 군사와 병거 3백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을 때 어떻게 승리했는가? ‘강한자와 약한자 사이에 도와줄 이 주밖에 없사오니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다. 여호사밧왕은 모압자손 암몬자손 마온 사람들이 연합군을 형성해 쳐들어 왔을 때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다. 절망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1970년 4월 11일 달나라를 향하여 아폴로 13호를 쏘아 올릴 때에 미국의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폴로 13호는 현대 과학의 걸작품이다. 이것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완벽하다. 이것이 고장 날 확률은 백만분지 일이다.>
모든 사람의 확신 속에 아폴로 13호는 달나라를 향하여 출발했다. 그러나 지구로부터 2만 마일을 벗어나지 못한 지역에서 그만 고장이 나고 말았다. 산소통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고, 돌아올 방법도 없었다. 그때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전국민에게 함께 아침 9시에 기도하자고 호소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군인도, 어린이도, 온 국민이 함께 기도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아폴로 13호가 무사히 태평양에 떨어진 것이다.
미 해군 군함에 의해 구조된 우주 비행사가 군목의 손을 잡고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그 주간 타임지 표지로 크게 보도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방송과 신문의 내용은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였다. 살 소망까지 끊어진 절망 속에도 길이 있다.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가 길이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하신다.
절망이라는 터널을 통과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다. 인간적 수단 방법을 총동원 했으나 침몰이 불가피해졌을 때 어쩔 수없이 요나는 바다에 던져진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까지 풍랑은 멈추지 않는다. 절망의 원인은 풍랑이 아니라 끝까지 고집을 버리지 않는 요나 자신이다. 하나님이 길이 되시기 위해서는 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를 붙잡고 있지 말고 던져야 한다. 나를 붙잡고 있는 한 하나님을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