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13-16)
방주의 필수성과 홍수 심판의 필연성 – 필수적인 일이 있고 선택적인 일이 있다. 방주를 만드는 일은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필수적인 일인 이유는 홍수 심판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준비할 수 있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다. 알 수 있는 필연적인 일이다. 심판은 누구나 알 수 있고 알아야 하는 필연적인 일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심판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필연적이며 처음이 있으면 나중이 필연적이고 출생이 있으면 죽음이 필연적이다.
지명한 나무 – 방주의 재료가 되는 나무는 나무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지명하고 선택한 나무가 중요하다. 교회의 일꾼이 바로 그렇다. 일꾼의 자격은 인간적 자질도 중요하지만 누가 지명하고 선택한 것이냐가 핵심 기준이 된다. 선택의 순서가 있다. 방주를 위하여 부름 받은 노아는 하나님의 택함과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노아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아를 택한 것이다. 양이 목자를 택한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택한 것이다.
지명한 나무 – 인생은 평생 선택의 연속에 의해 살아간다. 선택 받는 것은 물론 선택하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선택 행위에 있어 선택 전과 선택 후는 상반된 입장이 된다. 선택 전에는 자유가 있으나 선택 후에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선택 전에는 책임이 없으나 선택 후에는 책임을 피하지 못한다. 선택 후 무책임한 경우의 행동은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것이다. 또 다시 다른 선택을 시도하는 것이다. 무책임한 다른 선택은 실패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죽은 나무 – 어느 용도로 쓰임 받든지 재목으로 쓰임 받는 나무의 공통점은 죽은 나무이다. 산 나무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잘라진 나무만이 필요한 현장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사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죽은 나무는 순종이 가능하다. 죽지 않은 나무는 순종이 불가능하다. 죽지 않은 나무는 절대 움직이지도 않고 움직일 수도 없다. 자아가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 순종이 불가능하다.
죽은 나무 – 죽지 않은 사람의 순종과 믿음에는 제한적인 특징이 있다. 자기 기준에 의한 순종과 믿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대한 순종이 전폭적이지 않고 제한적이며 조건부적이다. 자기 기준의 범위 안에서의 순종이기 때문에 자기 기준의 범위를 넘을 수가 없다. 그러한 순종과 믿음을 자신은 온전한 순종과 믿음으로 착각하고 전혀 문제의식이 없이 살다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비로서 제 정신이 들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굵은 나무 – 잘라져 현장으로 옮겨진 모든 나무가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맞는 나무를 선별하여 쓰임 받게 된다. 방주는 거대한 선박이다. 16세기까지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배였다. 기둥 하나가 장정 서너 사람의 아름드리 크기이다. 노아 가족만을 위한 배가 아니었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종류별로 일정 숫자 기준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했다. 한 가정의 구원에 필요한 규모가 아니라 세계의 생물을 다 수용해야 하는 규모였다.
굵은 나무 –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SIZE는 내 기준의 크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기준의 크기이다. 하나님의 크기는 기본적으로 내 기준을 월등히 뛰어 넘는 크기이다. 베드로의 그물이 잡힌 고기로 인하여 찢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기준이 찢어져야 한다. 나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크기는 그보다 크다. 적어도 하나님의 기준, 수준을 받아 들이는 크기여야 한다. 세계적인 스케일의 믿음과 기도와 순종이 되어야 한다.
다듬은 나무 – 지명한 나무 죽은 나무 굵은 나무를 선별하여 현장으로 가져 온 나무를 사용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 다듬는 과정이다. 다듬어지지 않으면 모든 조건이 훌륭해도 사용이 불가능하다. 다듬는 방법은 연단을 말한다. 연단은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연단한다. 항상 부딪히는 관계를 통하여 연단하는데 연단 대상은 상대적이다.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피차를 연단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문제시 하기 전에 자신을 봐야 연단이 이루어진다.
다듬은 나무 – 다듬는 기준은 언제나 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다. 내 기준도 상대 기준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목표를 놓고 연단 하시는 것이다. 반드시 연단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도에 합당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 받은 사람이 적은 이유가 연단 결과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다듬는 이유 – 용도에 적합한 재료로 다듬어진 나무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고유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주어진 용도에 쓰임 받는다는 것은 역할의 불변성을 말한다. 변동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홍수가 끝 날 때까지 변동이 없는 것이다. 있어도 안 된다. 끝까지 그 자리를 사수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