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4:36-44)

생각하지 않은 때 – 예수님의 재림 때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본문은 구절마다 시간적인 용어(때)가 등장한다. 때는 기회를 말한다. 모든 기회의 공통점이 있다. 기회는 언제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기회의 기회는 언제나 지금 뿐이다. 과거의 기회는 이미 지나간 기회이며 미래의 기회는 오지 않은 기회이다. 준비해야 하는 기회가 생각하고 있는 때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은 때라는 데에 딜레마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때 – 재림 때는 천지가 무너져도 이루어지는 말씀의 예고다.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도래한다. 재림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현실이다. 예외없이 부딪히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전혀 그 때를 알 수 없다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재림의 때 뿐 만 아니라 개별적인 인생은 그 여정을 알고 사는가 역시 아무도 모르고 산다. 인류의 종말과 아울러 개별적인 인생의 때도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두 가지 스케줄 – 노아 시대에 노아의 삶의 스케줄과 다른 사람들의 삶의 스케줄의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노아 가족과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나 노아는 하나님의 스케줄에 의한 사람을 살았고 다른 사람들은 세상적인 스케줄로 살았다. 하나님의 스케줄에 의한 인생과 사람의 스케줄에 의한 인생이 있다. 노아가 방주를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스케줄에 의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 – 홍수가 오고 재림의 종말이 오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인간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다가 올 재림의 사건도 틀림없이 눈앞에 등장할 것이다.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전제 아래 신앙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 

데려가는 사람, 버려지는 사람 –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던 중에 그 날이 왔을 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예측이 아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의 말씀이다. 같은 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두 가지 운명으로 나뉜다. 주님이 데려가는 사람이 있고 버려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같은 때 같은 장소에 있었음에도 불구히고 운명이 엇갈리는 것이다. 

같은 때 같은 장소 같은 일 동일한 시간과 장소, 동일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이 엇갈리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아도 내면의 의도와 동기, 목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 같은 일을 하지만 인생의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하나님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된다. 천국과 지옥으로 축복과 저주로 승리와 패배로 운명이 달라진다. 표면적인 동일성이 아니라 내면의 의도가 결정적 기준이 된다.

주가 오시는 날을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른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주님의 재림은 천지가 무너져도 어김없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 날을 알 수 없다는데 있다. 도적이 오는 시점을 알았다면 누구나 깨어서 준비하고 있다가 미리 지킬 수 있는데 시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준비가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너희 주’라는 표현은 분명히 믿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는 의미이다.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재림의 때가 생각지 않은 때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예상할 수 있어야 재림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텐데 예상이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 예상이 불가능한 시간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그 날을 놓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 날에 들림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결론이 된다. 물론 드림 받을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다. 눅18:8에서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기 때문이다. 

놓치지 않는 비결이 있다 — 42절에 “깨어 있으라”이다. 깨어 있는 사람과 잠든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잠든 사람은 존재(몸)은 살아있으나 의식과 생각은 죽은 것과 같다. 깨어있는 사람은 존재가 살아있고 행위가 살아있다. 살아 있는 행위가 살아있는 존재를 증명한다. 깨어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말한다. 존재도 행위도 살아있는 것이다. 몸은 살아있으나 의식과 생각이 죽은 것은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영적 식물인간이 있다. 영적으로 살아있을 때 깨어있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간은 언제나 지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