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8:7-9)

실족의 치명성 – 실족은 걷다가 한 걸음을 헛디디는 것이다. 한 걸음을 놓치는 것이 평지에서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절벽 끝에서는 다르다. 실수는 한 걸음이지만 추락하는 것은 몸 전체가 추락한다. 실명도 마찬가지다. 눈만 캄캄한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캄캄하고 평생이 캄캄하다. 여러 번 넘어지는 것은 위험하고 한 번 넘어지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평생에 단 한번의 사건이 운명을 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족의 원인 – 실족케 하는 원인을 본문은 눈 하나, 손 하나, 발 하나를 말한다. 온 몸이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일부가 실수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몸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실수하고 몸 전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의 끝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연속적으로, 다발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단 한번의 문제가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번 뿐인 인생은 구원의 기회가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무시하는 것들 – 전부는 중요시하고 일부는 소홀히 하는 실수를 하기 쉽다. 몸은 각각 독자적 기능을 가진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가 끝 부분에 있다고 해서 역시 소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끝 부분의 상태가 본체 전부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낸다. 끝 부분 상태가 본체 상태와 동일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은 공동 운명체에 있다는 증거이다. 

무시하는 것들 – 한번(하나)은 사소하고 여러 번(많은 숫자)은 중요성이 큰가. 숫자에서 “1” 이라는 숫자는 숫자의 시작이며 숫자의 마지막이며 완성이다. 한번(하나)의 중요성은 기초와 기본이라는 데 있다. 시간적 의미에서 순간과 영원이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찰나와 같은 시간과 영원의 시간이 크나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영원은 수많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모든 순간이 영원을 구성하는 동일한 속성을 가진다.

실수①(우연,필연) (사고,예정) – 실수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사고인가, 예정인가. 실수를 우연으로 사고로 알기 쉬우나 필연이며 예정이다. 만일 우연으로 알고 사고로 알면 불가항력 적으로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문제는 실수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수가 제삼자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한, 자발적이며 우발적이라는 것이다. 우발적 행동의 근원은 잠재의식에서 나온다. 잠재하고 있던 것들이 계기가 되면 표출되는 것이다. 

실수②(과거와 미래) – 실수에 대한 상식은 ‘고의가 아니다. 무의식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수는 습관에서 나온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실수할 때 처음인 것 같고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의식에서는 망각한다. 그러나 무의식속에는 각인이 된다. 한 번, 한 번을 망각했으나 그때마다 각인이 축적되었던 것이다. 미래와의 관계에서도 같다. 현재의 실수들이 무의식 속에 축적되는 것이다. 습관을 바꾸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죄의 크기와 종류 – 죄에서 사소한 것과 중대한 것의 차이가 있는가, 죄에서 한 가지 죄와 여러가지 죄의 차이가 있는가. 세상의 실정법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죄는 원죄에 있다. 원죄의 기준에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과 멸망 복과 저주는 자범죄가 아닌 원죄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인간적 기준에서 보는 죄의 차이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선악과를 몇 개를 먹었느냐가 아니라 먹었으냐 안먹었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절대 유일성의 중요성 – 구원과 생명의 특징은 하나님의 특징과 동일하다. 절대적이며 유일하다는 것이다. 예수만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인 이유가 그것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이다. 가짜 신인 우상은 종류가 많다. 두 주인은 다 주인이 아니다.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없는 사람이다. 날마다 집이 바뀌는 나그네는 집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이신 분이라는 것이다. 

두눈, 두손, 두발 – 두눈 중 하나가 두손 중 하나가 두발 중 하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두눈은 각각 다른 것을 볼 수 없고, 두손은 각각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 두발은 각각 다른 곳을 갈 수 없다. 문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도 혼도 육도 하나이다. 하나인 것을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이원화 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원화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사회에서 하나님과 계획은 동일 하시고 말씀은 동일하게 역사한다. 일원화된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며 현실에 구현되는 사람을 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