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가난하던 시절에는 그 흔한 물조차 귀했었다. 동네 여인들이 공동 우물에 와서 직접 물을 길어다 썼고 조금 여유있는 집들은 물지게꾼의 물을 사서 썼다. 북창 물장수가 유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이야기 일듯 싶은 일화가 있다.
물을 길어다 파는 물지게꾼이 있었다. 긴 장대 양 쪽 끝에 두 개의 물 항아리를 매달아 어깨에 지고 다녔다. 그 중 한 쪽 항아리가 물이 조금씩 샜다. 항아리 하나가 옆쪽에 금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이 간 항아리는 그런 자신의 결함을 창피해 했고, 주어진 역할을 반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 늘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런 상태로 계속 세월을 보낼 수 없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의 절반밖에 하지 못해 면목없습니다. 이제 저를 버리시고 새 항아리를 사서 쓰시지요. 그동안 너무 죄송해서 괴로웠습니다.”
주인인 물지게꾼이 되물었다. “왜 창피해 하고 미안해하는 거지?” 항아리는 “제 결점 때문에 수고의 대가를 충분한 받지 못하시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주인이 같은 시간과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절반의 효과밖에 얻지 못하게 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물지게꾼은 상심에 빠진 항아리에게 말했다. “우리가 물을 담고 오가는 길의 꽃들을 봐라.” 고개를 들어 보니 아름다운 들꽃이 길가에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꽃들이 길 한쪽 편에만 줄지어 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한 송이도 없었다. 꽃을 심는 사람이 길 양쪽에 다 심지 않고 한 쪽에만 심은 것이 이해가 안됐다.
“꽃들이 네가 다니는 쪽에만 싱싱하게 피어 있지? 나도 네 결함을 모르지 않아. 하지만, 그걸 잘 활용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네가 물을 담고 가는 쪽으로 미리 꽃씨들을 심어 놓았어. 결과적으로 네가 없었다면 저 아름다운 꽃들은 이 세상에 피어날 수 없었던 거야. 너는 그래서 그만큼 소중한 존재야. 꽃들에게도, 나에게도.”
물론 항아리의 말대로 금간 항아리는 주인의 노력을 반감시키는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다. 그래서 버리고 새 항아리를 사용하면 헛수고하는 실수를 방지하고 보다 효율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영리적인 이유로만 보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지 않고 모두의 유익을 생각한 물장수의 지혜가 아름답다.
항아리를 버리는 방법도 있고 버리지 않는 방법도 있다. 버리지 않는 방법은 그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귀한 지혜가 되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다. 그 결점으로 인하여 버릴 수도 있고 그 결점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 결점을 사용하는 방법이 모두를 위한 축복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유명한 사람, 장점만 있는 사람, 실력이 출중한 사람, 두뇌가 명석한 사람, 힘이 강한 사람, 부유한 사람만이 아니다. 그 반대가 더 많을 수 있다. 세상에는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고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보다 더 많을 수 있고 미련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보다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훌륭한 사람, 의로운 사람, 탁월한 사람 완벽한 사람보다 오히려 부족한 사람, 불의한 사람, 죄인인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을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 하셨다.
“약한 사람을 들어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미련한 사람을 들어 지혜로운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없는 사람을 들어 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셔서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인간이 자신이 누구보다 월등한 존재라는 착각을 하지 못하게 하심은 인간을 위해서이다.
착각으로 인한 교만으로 인류는 멸망하기 때문이다. 구원이 필수인 인간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인간은 금간 항아리라는 사실을 추호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금간 항아리를 사용하셔서 천국 가는 꽃 길을 만들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