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5:24-30)

내일이 있는 사람과 내일이 없는 사람 – 일하는 자세가 최소한의 자세로, 지극히 소극적인 자세로,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이다. 반면에 일하는 자세가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분명히 미래가 있는 사람이다. 새해가 시작된다고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신이 새로운 각오와 결단이 시작되어야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기회에 대한 자세 – 주어진 기회를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만드는 사람,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사람이 있고 주어진 기회를 마지막 기회로 만드는 결과로 인하여 기회가 전면 중단되는 사람이 있다. 기회의 특성에 일회성과 지속성이 있다. 모든 기회는 철저히 일회적이며 동시에 지속적인 이유는 모든 기회는 개별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며 개별적 기회가 연결되어 전체적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음 기회는 같은 기회가 아니라 다른 기회이다. 

기회에 대한 자세 – 기회를 얻는 사람과 기회를 잃는 사람이 있다. 죽었기에 기회가 끝난 사람이 있고 기회가 끝났기에 죽은 것 같은 인생이 되는 사람이 있다. 기회의 박탈은 기회가 중단된 사람이다. 기회가 중단된 사람은 시작된 것도 끝난 것도 없는 상태에 있다. 기회는 중단되지만 시간은 중단 되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중단된 사람은 허송세월 하는 인생이 된다. 기회는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잃어버린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에 대한 자세 –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의 불성실과 무책임, 부정직을 합리화하고 정당화 하기 위해 주인에 대하여 모함에 가까운 말을 서슴치 않는다. 직장을 사표 낸 사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만 둔 직장에 대하여 악평 하는 것과 같다. 주인을 부정직한 수전노로, 노동 착취하는 악덕 기업주로 매도한다. 자신의 모든 잘못을 주인의 잘못으로 완전히 전가한다. 죄인인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 이와 같다. 

주인에 대한 자세 – 주인의 인격을 손상 시키는 목적이 자신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인격을 훼손함으로 내 자신의 인격을 높힐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자신의 인격이 얼마나 훼손 되었는지를 증명할 뿐이다. 주인의 일을 훼손하는 것 역시 나의 삶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이 남의 입장보다 나의 입장을 옹호하고 정당화 하기 쉽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일에 대한 자세 – 하는 일에 의한 인생의 성공, 신앙 생활의 성공은 일의 종류에 있지 않고 일에 대한 자세에 있다. 일의; 종류가 성공의 중요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일에 대한 자세가 결정적이다. 기업 경영주도 하나님도 일의 종류가 아니라 자세를 본다. 자세가 모든 일의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의 종류를 선별하기 앞서 일에 대한 자세를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는 평생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절대 요소이다. 

일에 대한 자세 – 일의 종류보다 일에 대한 자세가 중요한 이유는 일에 대한 자세가 최소한의 자세, 소극적 자세, 불성실한 자세, 무책임한 자세일 때 결과는 실패일 수 밖에 없다. 성공하는 일 실패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최대한, 적극적, 긍정적, 성실하고 책임 있는 자세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하게 되어 있다. 포도원에 손해를 끼치는 일꾼을 방관하는 주인은 없다. 

자신에 대한 자세 – 남에 대한 평가가 정확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남의 잘잘못에 의하여 나의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장단점이 궁극적으로 나의 성패를 결정한다. 자기 평가에 냉정해야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훈련에 치열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평가에 의한 인격 손상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고맙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숙한 인격인 것이다.

자신에 대한 자세 – 세상이 달라져서 인생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바꿔야 운명이 달라진다. 나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꿔지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어도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여 영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서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자신의 구원 여부와 영생 여부를 확인 해야 한다. 예수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의 구원부터 가장 시급히 확인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