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10)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을 줍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된다는 차원에서 영향력이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은 그리스도인으로써 다른이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6:13절의 말씀에도 있듯이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즉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의로운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이 되지만 죄에게 붙들리면 불의한 일에 쓰여지는 도구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앉은뱅이와 베드로와 요한이 등장합니다. 첫번째로 앉은뱅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고 생활수단은 구걸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미문이라는 문앞에서 구걸 할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인생의 모순을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구걸하는 자가 있는 문이 “미문”이라고 합니다. “미문”의 뜻은 아름다운 문이라는 말인데, 정작 앉은뱅이의 삶은 아름답지 못한 구걸을 해야만 살수 있고, 태어나면서 앉은뱅이고 오랜 세월 매일 같이 그 문앞에 나와 구걸해야 하는것을 보면 그 누구도 앉은뱅이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 아름답게 해 줄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 앉은뱅이의 인생자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늘 무엇을 얻어야만, 받아야만 살수 있는 가엾은 인생입니다. 그런 불쌍한 앉은뱅이에게 오늘 말씀을 보면 인생 최고의 전환점, 평생 안고 왔던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는 구원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그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였는가요? 바로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사람, 바로 예수님의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은 과거의 베드로와 요한이 아닙니다. 1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요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기도하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3절에 보면 비록 앉은뱅이의 첫 눈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다른 사람들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기에 구걸할 생각만 하고 있었으나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합니까?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이땅에서 무엇을 얻고자 늘 고심하던 연약한 영혼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구원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이상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전해준 베드로와 요한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하여 진정한 죄사함, 구원, 거듭남과 성령의 권능을 받은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금과 은 나 없으나 라고 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가진 사람이여서 그렇게 말한것일까요? 실상은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교회 앞으로 가져왔기에 그 물질로 구제 사역도 감당하던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앉은뱅이에게 줄 물질도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로 도와 준다 한들 근본적인 앉은뱅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물질이 있건 없건 계속 앉은뱅이로 살아갈것 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변화시켜주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앉은뱅이에게 주려고 하는것입니다. 과거의 베드로와 요한을 보면 하나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던 사람이였습니다. 과거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이런 예수이름의 능력을 믿지도 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주님의 능력, 즉 성령의 능력을 품은 자로써 그 능력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령의 능력을 전해주는 사람으로 살수 있을까요?

첫째로, 담기위해서 비워야 합니다. 좋은 것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좋은 것을 담아야 하는데 그전에 나를 비워야 합니다. 딤후2:20의 말씀과 같이 금, 은, 질그릇, 나무그릇들 중에 사람들이 쓰는 그릇은 바로 깨끗한 그릇입니다. 아무리 그릇이 좋다 한들 더러우면 좋은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것이 더러운 것으로 채워진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합니다.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지않은 안 좋은 모습, 습관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버리면 버릴수록 좋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자리가 생깁니다. 

둘째로, 좋은 것을 가져야 합니다. 나에게 좋은것이 없다면 어떻게 좋은것을 주겠습니까? 좋은 것을 가져야 좋은것을 줄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많은 좋은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우리를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고,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가지게 한것 무엇일까요? 무엇이 사복음서에서 방황하던 베드로와 요한으로 하여금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을까요?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충만. 누가복음 11:10-13절에서도 말씀하기를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는 좋은것을 주거늘 하늘에 계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구할때 제일 좋은것 바로 성령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제일 좋은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생명의 영, 능력의 영, 믿음을 주시는 영 성령님이 십니다. 성령의 사람이 될때 그 성령의 능력을 나누어 줄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많이 받아야 많이 줄수 있습니다. 좋은것을 많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것을 줄수 있는 양은 내가 얼마만큼 그 좋은 것을 가졌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충만’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 설명 해주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 넘쳐남이 앉은뱅이에게 까지 흘러 간것입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매일 필요했고 늘 준비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라고 합니다. 매일 말씀, 기도, 예배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아 안좋은 것을 회개와 결단으로 비워내고 깨끗한 내 영혼에 주님 주시는 좋은것으로 많이 담아 많이 나누어주는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위와 같이 세가지를 생각해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오늘도 인생의 앉은뱅이 된 영혼들을 일으켜 세우길 도전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