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17-22)
아버지의 우물 나의 우물 – 메워진 아버지의 우물을 이삭이 다시 팠다. 우물은 목축과 농사의 생수를 공급하는 필수적인 재산이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삭 자신도 아버지처럼 직접 파야 한다. 사사기 2:10에서 기성 세대가 다 열조에게 돌아간 후 태어난 세대를 다음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로 표시한다. 육신적 혈통은 이어졌으나 영적 혈통은 단절되어 다른 세대가 되어버린 현상이 종말이 임박한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남의 우물과 나의 우물 – 우물을 파는 땅은 남의 땅이 아니라 나의 땅 이어야 한다. 남의 땅에 판 우물은 남의 것이 되고 나의 땅에 판 우물이 나의 우물이 된다. 나의 땅은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 되고 남의 땅은 남의 몸과 남의 마음이다. 남의 마음을 파는 것은 남의 마음을 연단하는 것이며 나의 마음을 파는 것은 나를 연단하는 것이다. 연단을 받아야 마음의 변화와 영적 변화가 일어난다. 마음과 영적 변화는 예수를 영접하며 성령으로 거듭나는 결과요 증거가 된다.
우물의 깊이 – 본문 19절에 산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샘 근원은 산꼭대기에는 없다. 반드시 산골짜기 깊은 곳을 파야 샘 근원을 얻을 수 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하나님의 은혜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보이는 깊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깊이에서 지하수가 분출된다. 보이는 지표층에는 지하수가 없다. 지하수가 있는 깊이가 있다.
우물 파는 방향 – 우물 파는 방향은 보이는 쪽에서 보이지 않는 쪽으로 파들어가게 된다. 육신적 고난을 통해 마음을 낮아지게,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물을 파면서 나의 키가 보이면 아직 깊이 내려간 것이 아니다. 나의 키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 한참 내려간 모습이 확인되어야 한다. 육신적 고난으로 마음이 완전히 비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받아 들이고 생명이 들어오게 된다.
우물 파는 방법 – 땅을 파는 과정이 마음을 파는 과정이다. 몸의 고난을 통하여 마음이 고통을 느끼게 되고 극심한 단계까지 가면 마음(혼)과 그 안에 있는 고정관념과 아집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론과 지식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몸의 희생없이는 마음의 희생이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물리적인 방법과 인간 관계에서의 구체적 실제적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물리적 고통이 마음의 고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물의 넓이 확보 – 이삭에게 우물을 뺏기는 시련을 반복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번째 우물 파게 되는 땅 이름이 르호봇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땅을 넓게 하셨다는 것이다. 넓은 땅을 준비하시고 거기까지 오도록 우물을 뺏기는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다. 우물 파는 연단을 반복하시는 목적은 두 가지다. 우물 파는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과 시련을 감당하는 믿음의 크기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육적 혼적 영적 Size를 확대 시켜서 하나님의 비전을 감당케 하시는 것이다.
우물의 깊이와 넓이 – 우물의 깊이는 생수 생산의 문제라고 하면 우물 넓이는 생수 저장의 문제가 된다. 혼적 요소인 마음의 넓이가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스케일과 동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의 규모를 탓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게 된다. 우물을 뺏은 사람이 큰 그릇이 아니라 우물을 뻿기고 다시 파는 사람이 큰 사람이며 큰 그릇이다.
마음 그릇의 형태 – <다 좋은 마음> 착한 마음인데 사실은 약한 마음이다. 약하기 때문에 남의 요청을 거절 못하고 다 받아 주고 나서 감당이 안되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도 죄를 짓고 무책임하다고 욕을 먹는다. <다 틀린 마음> 법없이 사는 사람, 경우에 빠지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하기 쉬운 사람으로서 남을 판단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잘 넘어지는 마음> 균형이 안 잡힌 사람이다. 무게 중심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비어 있어도 쓰러지고 너무 채워도 쓰러진다.
마음 그릇의 형태 – <나밖에 모르는 마음> 욕심이 많고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로 끝없이 자기밖에 모르고 베푸는 것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밑도 끝도 없는 마음> 언제 시작할지 모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람.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 <쓰러진 마음> 삐딱한 사람, 부정적인 사람. 흠잡을 때 없는 사람이나 단 하나 쓰러져 있는 것이 문제다. 매사에 삐딱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다.
깊고 넓은 그릇 – 영적 변화는 필수적이고 혼적 변화를 큰 그릇, 넓은 그릇이 되어야 하나님의 용도대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릇의 존재 목적은 그릇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주인의 용도를 위해서이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마음껏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셔서 쓰신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8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