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12-18)
축복의 본질과 비본질 – 축복받고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축복의 본질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다. 축복과 하나님, 축복과 말씀 중에 어느 것이 본질이며 비본질인가 본질은 축복 주시는 하나님이며 그 말씀이다. 축복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과 비본질이 바뀌면 성공이 성공이 아니며 축복이 축복이 아니다. 축복 자체는 분명 좋은 것이지만 본질과 비본질이 바뀌지 않아야 한다.
100배의 축복이 증명하는 것 –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언약)을 증명하고 이삭의 믿음과 순종을 증명한다. 축복이 증명하는 것은 본질을 증명하는 것이며 본질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축복과 하나님관계에서는 하나님이 본질이며 축복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나의 믿음과 순종이 본질이다. 축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종교 생활이며 미신을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축복이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이 목적인 것이다.
축복의 공급과 축복의 관리 – 성경 전체는 역할 분담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역할과 나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축복에 있어서도 축복의 공급은 하나님의 역할이며 축복의 관리는 나의 역할이다. 축복에 있어서의 역할에서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축복의 공급 역할보다 축복의 관리 역할이다. 축복의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기전에 먼저 확인하시는 것은 축복 관리 능력이다. 관리 능력이 안되면 축복의 공급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축복의 위험성 – 축복의 위험성은 축복의 관리에 달려 있다. 관리 여하에 따라서 축복이 축복이 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한다. 신8:11-18에서 가나안에 들어 간 후 배부르며 풍족한 삶을 살게 될 때 여호와를 잊어 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하셨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된다. 축복 관리는 하나님 관계 관리이다. 축복 받은 후 하나님 관계 관리에 핵심이 있다.
블레셋 사람의 시기와 우물 메우기 – 마귀는 사람의 구원과 축복을 극도로 방해한다. 블레셋 사람이 이삭의 축복을 시기하고 방해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역사를 말한다. 마귀의 방해는 축복으로 번성한 양떼를 훔쳐 가거나 해코지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우물을 메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 떼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제한된 방법이지만 우물을 막는 것은 양 떼를 한꺼번에 몰살 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물 메우기 – 우물을 막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계책과 전략이라는 것을 마귀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리적인 손해와 피해를 주는 이유는 그 억울함으로 인하여 이삭의 마음에 마귀의 마음에 있는 미움이 들어가 이삭의 마음이 메워지고 막히게 하려는 수법인 것이다. 우물이 메워지면 손해를 준 상대에게 미움이 생기는데 그 미움으로 내 마음이 메워지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원인이든지 미움이 발생하면 결과는 윈인에 상관없이 내 마음이 열려지게 된다.
우물 메우기 – 우물이 막히게 된 이유를 제공한 상대에게만 마음이 막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상대로 인하여 마음이 막혔어도 모든 사람을 향하여 마음이 막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귀는 이런 원리를 잘 알고 이 방법을 이용한다. 우물이 막히는 이유의 종류에 관계없이 결과는 우물이 막혔다는 사실이다. 우물이 막히게 된 억울함의 정당성과 합당함에 관계없이 현재 막혀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 관계가 현재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문의 열림과 닫힘 – 마음 문이 닫히면 예배가 기도가 말씀이 막힌다.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이 막히면 교회 생활이 막힌 것이다. 교회 문이 막히면 구원 문이 막힌 것이다.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교회를 통해서만이 구원이가능하다. 교회 문이 막혔다면 마음 문이 막힌 것이요 천국 문이 막힌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문밖에서 예수님이 문을두드리신다. 성도들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것이다. 마음 문이 닫힌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이 안 계신 교회였다.
다시 판 우물 –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우물을 메웠다. 죽었기 때문에 우물이 메워졌지만 우물이 메워지고 다시 파지 않으면 다 죽는다. 우물을 다시 파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요 우물의 다시 파면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우물을 파는 사람이요 우물을 파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그곳을 떠나 새로운 땅에 가서도 이삭은 우물을 다시 팠다. 아브라함이 팠던 자리에 이삭도 다시 팠다. 왜냐면 그곳이 물이 나오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