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4:1-10)

블레셋으로 피신한 다윗 –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피하게 된 다윗이 급기야 블레셋 땅으로 피신하게 되었으나 피신처가 아니라 죽음의 덫에 빠진 결과가 되었다. 다윗의 원수 골리앗의 백성이 블레셋이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미친 사람의 모습으로 연기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미친 사람이 분명했다. 블레셋 왕 아기스가 너무 한심하게 본 것이다. 도저히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사로 보기 어려웠다. 신속히 추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위경에서 보호하신 하나님 – 위경에서 보호받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을 송축하며 여호와의 광대 하심과 여호와를 자랑하며 항상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위경에 처할수록 하나님을 광대하심과 그 이름의 위대하심을 더욱 높이는 것이다. 형통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기는 쉽다. 그러나 정반대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다. 다윗의 신앙의 위대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구할 때 응답하시고 건지시는 하나님 – 믿음의 사람인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다윗의 시편은 그의 기도이다. 다윗의 영성은 그의 기도에 잘 나타난다. 기도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연단의 지속이 다윗을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 되게 했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칠 때 맹수를 만나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체험이 많았던 다윗은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고난의 지속은 기도의 지속이 되었다. 

곤고한 자의 부르짖음과 환난에서 건지심 – 비참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고아의 하나님, 과부의 하나님, 나그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다.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 이와 같은 모습을 가진 인생이다. 곤고한 것은 비참한 상태를 말한다. 인생들이 자신의 모습이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환난에서 구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주를 경외하는 자를 지키시는 하나님 – 주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예배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산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는 삶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울타리가 삶의 모든 영역을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울타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다. 하나님의 울타리를 돌파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 사물을 아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영적인 대상, 육적인 대상을 망라하여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시각을 통하여 알 수 없는 것을 청각을 통해 알 수 있을 수 있고 시각도 청각도 알 수 없는 것을 미각이 알 수 있고 후각으로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촉각으로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근본적인 감각이 있다. 영적 감각이다.영적 감각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여호와 선하심에 대한 경험 – 예수님께 선한 선생이라 부르는 청년에게 선하신 이는 하나님 한 분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선하심이다. 오직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창조하신 목적이 선하심에 있고 역사의 진행 내용이 선하심에 근거한다. 인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뜻이 선하심에 있다. 인생의 현장에서 다양한 희로애락의 상황이 점철되지만 선하심에는 변함이 없다. 

여호와의 전능 하심에 대한 경험 – 하나님의 존재를 가장 강력하게 경험하는 경우가 그의 전능하심이다. 성경의 시작에서 끝까지 대표적인 하나님의 특징은 전능하심이다. 천지창조에서 시작된 기적은 종말에 예수 재림과 함께 창조 세계가 소멸될 때까지 지속된다. 역사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 하심은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대표성은 전능하심이다. 영원히 유일한 전능자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다 – 일용할 양식은 살아있는 피조물에게 있어 생명 그 자체이다. 일용할 양식은 한끼의 식사만이 아니라 평생의 모든 필요를 말한다. 문제는 모든 필요를 피조물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창조주의 공급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으시고 구원하신 은혜에 대한 당연한 의무이지만 살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