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초에 시작 되었던 팬데믹이 약 3년만에 종식이 되었다. 생각도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이 세계를 휩쓸었다.
초유의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 앞에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꿈에도 생각지 않은 불행이 시작된 것도, 끝나는 것도 인간의
계획과 대책에 의해서가 아니다. 팬데믹이 지나간 것으로 다행히 여기고 끝날 것이 아니다. 유효 기간이 지난 물건을 치우듯이
과거의 창고에 기억을 묻어 둘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처하며 깨달았던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확실히 일상을 바꾼다. 코로나가 처음 찾아와 우리의 인식에 위협으로 자리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회적 위기감 고조와
함께, 어렵고 불편한 시기를 거치며 우리의 일상은 요동쳤다. 회사에 출근하고 업무를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표준적 인식으로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고 소통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그 어색한 방식은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지로 변모했다.


코로나는 당연하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불편한 것이 편한하게 받아 들여지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하던 비표준을
표준으로 받아들여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시도는 고정 관념들이 무너지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허락하셔서
인간의 교만과 아집을 깨뜨리신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것이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무엇으로 대적하고 부인해도 부인할 수 없고 대적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류는 치명적인 질병의 역사적 경험이 있다. 14세기의 유럽의 흑사병이나 15세기 아메리카 대륙에 창궐했던 천연두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면서 인간의 미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게 되고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앞에 그분이 절대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코로나의 기습으로 그 현실 대응에 급급하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타협한 현상 중에 특히 크리스챤들의 예배를
비롯한 각종 교회 모임의 약화가 있다. 기독교인과 교회의 숫자적 감소가 매우 치명적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지만 다가온 현실이
감당 능력을 넘어서는 거대한 것일수록 더더욱 긴장하고 허둥지둥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예고된 상황이든
갑작스런 상황이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져는 안 된다.


코로나 상황 뿐이 아니라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어떻게 되었나 과연 이루어졌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코로나가 오고 안 오고를 떠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김없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코로나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으로
현장에서 확실히 증명하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가 특정 국가의 실수였느냐 고의였느냐 여러가지 분석과 해석이 등장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허락과 함께 종말적 징조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다. 코로나로 많은 교회와 교인이 증발했다는 통계가
나오지만 정확히 말해서 코로나로 인하여 증발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증명된 것이다. 증발했다는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그 믿음이 이미 증발 했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점차 예상치 못한 환난들이 나타날 터인데 그
환난들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장차 다가오는 종말 시대를 대비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고 지혜와 결단이
되어야 한다. 현재 자신의 믿음이 어떠한 환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수준에 있는지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지나간 과거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때 나의 믿음은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믿음이 승리하고 있었는가
패배하고 있었는가


우리 자신은 지난 과거를 돌아 보면서 무엇을 깨닫는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있는 사람의 미래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잘못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과거에서 배울 수 있어야 미래가 달라진다. 인생을 살면서 깨닫는 것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운 사람은 뒤를 볼 수 있으나 비우지 않은 사람은 불 수가 없다. 뒤를 볼 수 있어야 앞을 볼 수 있다. 뒤를 보는 눈과 앞을
보는 눈이 같은 눈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남의 분석과 평가가 아무리 훌륭해도 끊임없이
남이 돌봐 줄 수가 없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