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학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 옛 교수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얘기를 나누다가 화제(話題)가 세상 살아가기에 관한
것으로 옮겨갔다. 졸업생들은 인생의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있던 교수님이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커피포트와 함께 도자기·유리·플라스틱·크리스털로 된
다양한 컵이 가득 담긴 쟁반을 가져왔다. 어떤 컵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것이었고, 어떤 것은 비싼 재료로 제작된 것이었다. 각자
원하는 컵을 선택하자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컵들만 고르고, 단순하고 값싼 컵은 외면하는구나. 여러분에겐 그게 정상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제일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이 문제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컵이 커피를 향기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원하는 건 커피이지 컵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여러분은
의식적으로 가장 좋은 컵들을 골랐다.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은 어떤 컵을 선택하는지 살피는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


인생은 커피와 같은 거다. 직업·돈·지위·권력·명예 등은 컵과 같은 존재여서, 인생을 유지하기 위한 것 일 뿐이다. 컵의 종류가
삶의 질을 결정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것이 커피이고 컵인지 종종 혼동한다. 커피를 위해서 사는 것인지 컵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구별을 못하고 인생이 많다.


아니 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을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하고 돈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땀을 흘린다. 정작 컵을 필요로 하는 커피는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인생이
우리 자신이 아닌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컵에만 집중하여 커피 맛을 잊어 버리고 산다. 커피 비즈니스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커피의 품질이 중요한지
커피잔의 모양이 중요한지 분별이 안되어 사람들의 선호하는 커피잔을 위해 전부를 거는 어리석은 사람의 비즈니스는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다. 일단 커피의 맛과 질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커피의 포장이나 머그의 디자인은 그 다음 문제다. 커피잔의 디자인 때문에 특정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커피 자체의 맛과
향의 노하우에 있어서 어느 커피와 견주어도 자신 있어야 한다.


본질이 비본질로 바뀌고 비본질이 본질로 둔갑되어 커피보다 커피잔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 비인간화의 현상이다.삶의 초점이
무엇에 맞추어져 있는가 육신적인 것인가 영적인 것인가. 육신이 커피 잔이라고 한다면 커피는 영혼이다. 육신을 중요시하여
육신적 가치가 목적이 되었다면 커피가 아닌 커피잔을 위한 삶이다.


이러한 현상은 에덴에서의 타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마귀의 속임수에 영적 생명을 외면하고 육신적 욕구를 추구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 인간의 삶이 되어 버린 것이다. 본질을 상실한 인간은 비본질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끝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비본질인 육신적 방법으로 행복과 보람을 찾으려는 노력은 인생을 낭비하는 노력일 뿐이다.


신앙 생활과 인생 성공의 비결도 마찬가지다. 본질에 충실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본질은 영혼의 문제다.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가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삶은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해도 해결된 것이 전혀 없는 삶이다. 어느 부자가
있었다. 농사가 너무 잘되어 넘치는 수확으로 창고가 모자라 창고를 크게 확장하고 크게 만족한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말한다. “내 영혼아 넘치는 수확으로 평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며 놀자”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같으니라.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선악과에 올인하도록 유혹하여 인간의 영혼을 사냥했다. 선악과는 얻었으나 영혼을 잃었다.
세상을 전부 얻었어도 영혼을 잃은 인간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 전부를 얻은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인생이 구원받지 못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