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평생 한 직업만 갖고 회사에 충성한다는 것은 옛 말이 돼 버렸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의하면 25세 이상 근로자의 근속 기간 중간값(median·가장 큰 값과 작은 값의 평균값)은 1983년 이후 5년에 머물러 있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1957~1964년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8세에서 44세까지 평균 11개의 직업을 거쳤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커리어를 쌓는 일이 이제는 흔해졌다.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이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연봉 때문만도 아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커리어 관리를 할 수 있을까.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위기의 순간 기업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괴적 혁신이란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창출해 기존의 것들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경영학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인생 자체, 신앙 자체가 그렇다.
개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몸담은 환경에서 큰 어려움 없이 현상유지하는 것이 전부인 사람에게는 파괴는 불필요하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정체에 빠졌거나 올라가는 사다리 꼭대기에 도달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면 스스로를 파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경쟁이 없는 환경을 택하지 말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을 택하라. 편하고 월급 더 주는 직장을 찾지 말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익숙해진 업무 능력을 경쟁력으로 붙들지 말고 이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모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잘해내는 업무는 많은 다른 사람도 동일한 수준으로 잘해낼 수 있는 일이다.
금전적 보상이 보상의 전부가 아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돈보다 월등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모든 경제 활동의 목적이 금전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보이는 물질적 가치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주식 가격의 등락의 추이를 따라 다니는 투자 수준으로는 투자 성공이 어렵다. 경제 상황 전반을 읽고 기업의 미래를 측정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실제 기업 경영인들 이상의 안목이 필요한 이유다.
안목의 계발은 자기 자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평가가 가능하냐에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에 대하여 보다 공격적이고 도전적이기 보다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것이 일반적인 심리이다.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 때로는 자기 혁신을 위해 보수와 지위가 깎이는 선택도 불사해야 한다. 이 선택을 통해 자기 혁신이 이루어질 때, 주어진 자리를 감당하기에도 벅찼던 시절에는 감히 넘볼 수 없었던 높이를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경쟁력을 파악할 때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생각하라. 그것이 파괴적 강점이다. 막강한 경쟁력이란 간단하다.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려면 부단히 남들이 도전하지 못하는 것을 한 발 앞서 도전하는 것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되리라!’ 다른 사람에게는 큰 산이었으나 왜 스룹바벨에게는 큰 산이 아닌가? 이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파괴적 혁신에 대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기업이 기존 시장 아닌 새로운 시장에서 성장을 추구할 때 가능성은 6배 높고 잠재 수익은 20배 크다. 개인의 커리어 파괴 효과를 같은 방법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여러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게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스타트업에 있어 가장 활발하다는 것은 그만큼 도전이 활발하다는 증거가 된다.
현재의 상태는 강한 저항을 지닌다.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뒷걸음질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 파괴를 게을리 하면 결국 스스로 도태의 길을 걷게 된다. 하나님도 세상도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절대로 기회를 주지 않는다. 혁신을 무시하면 더 큰 승리의 기회를 놓치고 개인적인 성장을 희생하게 된다. 자기를 파괴하는 자만이 십자가의 능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파괴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결단이 인류를 살리는 결단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