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13-16)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빛과 소금으로써 땅끝까지 예수님을 전해야 할 사명자들 입니다. 그리고 훗날 이땅에서 마지막 호흡을 다한 후 주님 나라 천국에 입성할 것을 확신하고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훌륭한 그리스도인 일까요? 어떤 그리스도인이 건강하고, 올바른 그리스도인 일까요?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할때까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올바른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정신은 성장 하였는데 몸이 크지 않는다면, 몹시 불편하거나 단명하게 될것 입니다. 반대로 몸은 성장 하였는데 생각과 심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정상인으로써 살기가 힘들것입니다. ‘어른 아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어려서 부모나, 불우한 환경, 트라마로 인해 학대와 충격을 받아 심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어른이 되어도 아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상처받고, 은둔하거나 외톨이가 되는 경향이 있고, 고독 자기소외감, 감정기복이 심한 증상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필히 건강한 내면의 성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존재적 가치를 회복하고, 자립심이 키워지고, 문제를 극복하고, 자신을 통제하고,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적인 “어른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이 그렇게 중요하기에 그리스도인으로써 성장해야 한다는 세가지 요점을 가지고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구원받았으면 성장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는 열심히 도를 배워 경지에 달하는 것으로 생각 합니다. 도를 닦다 보면 득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5:1의 말씀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바로 칭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으니 예수님을 믿는 순간 거듭남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기위해 성화되는 의무가 주어지게 됩니다. 거듭 났다면, 즉 태어났다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52의 말씀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도 성장 하셨다고 합니다. 신앙이 계속 성장할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기 이르는 사람입니다. 장성한 예수, 공생애의 예수,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후퇴합니다. 라이프 웨이라는 기관에서 실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어른들 54%가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구원자가 아닌 훌륭한 선생 정도로만 아는 것입니다. 더 참담한 것은 때로는 이러한 여론과 세상의 소리에 그리스도인들이 혼돈하고 흔들릴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고 본문의 1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그렇기에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13절의 말씀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말하며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는 일’은 지식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원어로 ‘엘피 그노시스’라고 합니다. 그노시스는 인간의 지식을 이야기 하지만, 앞에 엘피가 붙으면 하늘로부터 내려온 지식,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헛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 바로 ‘엘피 그노시스’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삶으로 실천함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신앙 성장은 멈추게 되고, 멈춤과 동시에 후퇴하게 됩니다. 마치 비행기가 날기를 멈추는 순간 중력에 의해 추락하는 것처럼 성장을 멈추면 추락하게 됩니다. 로마서 16:19의 말씀을 보면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고 합니다. 선한일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 신앙인들을 온전하게 성장하게 하는 일에 지혜를 다해 열심을 내야 하고 악한일 즉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우리의 신앙을 후퇴하게 하는일에는 미련할 정도로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반대로 합니다. 선한일이 희생과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최소한만 하려거나 회피할때가 있고 악한일이 재밌게 느껴진다면 더 열심히 하니 말입니다. 성장의 영역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선한 모습이 성장하려면 악한 모습은 후퇴시켜야 합니다. 부지런했던 사람이 자꾸 부지런한 모습이 사라진다면 게으름이 그 사람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직했던 사람이 자꾸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정직함의 성장이 멈추고 거짓이 그 안에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 신앙의 성장이 멈추면 신앙은 반드시 후퇴하여 그 사람의 삶에 온갖 죄와 불법이 성행하게 될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반드시,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은 꾸준함으로 함께 성장합니다. 사람이 하루 아침에 다 크는 것이 아닌것처럼 신앙도 꾸준함을 통해 성장합니다. 15절의 말씀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단어는 “범사”에 입니다. 범사가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모든 일, 모든 순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에 신앙인이 참된 것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할때 예수님처럼 자라난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은 어떻습니까? 주일예배 시간은 그래도 잘해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시간은 그래도 주님께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또 기분이 좋고 모든것이 평탄한 것 같을때 주님뜻대로 하려고 해 봅니다. 그러나 정작 내 삶의 순간들, 좋은 순간 외에 힘들때, 어려울때, 괴로울때 바로 그때에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참된 것을 할때 우리의 신앙은 “범사”에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꾸준함. 한번의 예배로 하나님에 대해 모든것을 알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예배함으로, 꾸준히 말씀과 기도로 나아옴으로, 꾸준히 도전하고 실천해 봄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신앙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게 섬김과 도움이 되기 위해 주님은 교회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15절 끝부터 16절까지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모든 성도들은 몸의 각 마디, 마디가 되어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연합하여 한 몸으로써 성장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중요한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는 당신의 몸이라고 하셨고, 모든 성도는 마디라고 말씀하셨으니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알수 있습니다. 마디 혼자 살아 생존하는 몸은 없습니다. 마디 마디가 연결되고 함께 역할을 감당해야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초대 교회로 성장하게 하셨고, 누구든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부인하고 홀로 신앙으로 성장할수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힘들때 일으켜주고, 내가 잘못 갈때에 꾸짖어 줄수 있는 교회가 있을때 우리는 온전한 신앙의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신앙은 반드시 성장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