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안과 밖의 차이(눅24:1-6)

최종 목적지(도착지) – 부활 사건의 이야기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덤을 찾아가는 것은 특정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최종 목적지가 무덤이다. 인생은 선택적 숙명과 필연적 숙명을 살지만 궁극적 도착 지점은 무덤이다. 이미 무덤에 간 사람이 있고 무덤에 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그네 길을 가는 인생의 여행은 무덤에서 끝난다.

무덤의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의 차이 – 치열한 생존경쟁의 승부는 각자의 치열한 경쟁력 확보를 유발한다.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리로 세계를 제패한 사람도 결국에는 무덤에 들어가고 치열한 경쟁에서 패배하여 처참한 처지에서 놓이게 되어도 결국에는 무덤에 들어간다. 무덤에 들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다양하고 탁월한 실력이 있어도 생명이 없으면 무덤에 들어가고 실력이 없고 부족해도 생명이 있으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다.

무덤 문이 열리다 – 무덤을 찾아가는 여인들은 돌문을 옮겨야 하는 걱정을 했다. ‘심히 큰 돌’이었기 때문이다. 무덤 문 뿐만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열 수 있는 문이 없다. 인생 최초의 문인 태의 문으로부터 최후의 문인 무덤 문까지 본인 스스로 열 수 있는 문은 없다. 문이 열리느냐 열리지 않느냐는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있고 하나님의 결정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에 있다.

정상적 상황, 비정상적 상황 –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의 눈 앞에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 열릴 수 없는 무덤이 열려 있고 있어야 할 시체가 없었다. 심히 근심스럽고 두려운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황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 상황에 판단은 자신의 기준에 의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이 어떠한 기준인가가 중요하다. 그 기준이 상황에 대한 판단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반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쁜 상항 근심 상황 – 무덤이 비어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근심하는 이유는 자신의 고정 관념 때문이다. 이미 말씀하신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를 잊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면 근심이 아니라 기뻐했을 것이다. 문제는 말씀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상황의 상태가 아닌 말씀 부재가 문제인 것이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는 지적에 따라 그 여인들은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언제나 말씀이 원인을 규명하고 문제의 해답이 된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찾고자 하는 것과 찾고 있는 장소가 일치되느냐 일치 되지 않느냐는 찾는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찾는 사람이 죽어있는 사람을 모아 놓는 곳에 가서 찾으면 찾을 수 있겠는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바다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가면 되는가 죽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살기 위해 산다는 사람이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오지 않고 세상을 방황하고 있다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예수님을 아직 죽은 자로 믿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의 고정 관념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자기 기준에 근거한다. 인간의 기준은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인간의 한계 안에는 하나님이 존재할 수 없다. 지식의 한계, 수단과 방법의 한계, 능력의 한계 안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덤은 끝인가 시작인가 – 예외없이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육신의 목숨을 기준으로 하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한한 육신의 목숨이 끝나면 영원한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음은 유한한 시간의 끝이고 무한한 시간의 시작 이 된다.  무덤은 유한에서 무한으로 가는 정거장인 셈이다. 무한의 시작이 영생의 시작인가 영벌의 시작인가가 관건이다. 유한한 시간에서 구원을 받았느냐에 따라 무한의 시작이 어떤 시작인가가 결정된다.

무덤에 들어 가는 사람, 무덤에서 나오는 사람 – 여인들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동안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오셨다. 나는 무덤으로 가고 있는가 무덤에서 나오고 있는가 예수를 믿는 사람 가운데 구원의 여부에 따라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무덤으로 가는 사람, 무덤에서 나온 사람. 구원이 확실한 사람은 확실히 무덤에서 나온 사람이다. 다시말해 죽음을 이긴 사람이다. 육신의 기간 동안 죽음을 해결하는가 못하는가에 의해 영원한 시간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