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대답②  (단3:13-18)

예배의 원칙과 기준 – 우상 숭배를 강요하는 느부갓네살의 모습에서 예배에 대한 세가지 착각을 볼 수 있다. 타협이 가능하다는 착각, 변경이 가능하다는 착각, 선택이 가능하다는 착각이다. 반대로 우상 숭배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우상 숭배는 단 한번도 불가능, 끝까지 불가능, 생사를 걸고 불가능이다. 한번에 대한 착각이 있다. 한번의 예배 포기는 포기인가 아닌가. 한번은 시작인가 끝인가. 십계명 중 하나를 어기는 것과 여러 번 어긴 것과 같은가 다른가. 

상황과 원칙(기준) – 상황에 따라 원칙과 기준이 붕괴되느냐 아니냐의 중요성은 상황에 의해 삶이 붕괴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기준의 붕괴 여부가 인생의 붕괴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기준과 원칙이 흔들리지 않으면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견고한 삶이라 해도 말씀이 무너지면 이미 무너진 삶이다. 이미 영적으로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잘라진 가지가 당장에는 시들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마르는 것처럼. 

하나님을 가짜 신(神)으로 만들지 말라 – ‘불 가운데서 구원할 신이 과연 어떤 신이겠느냐’는 불의 물리적 힘을 믿는 바벨론 왕의 장담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돈과 권력의 힘을 믿고 확신한다. 돈에 대한 확신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능가한다. 이런 장담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진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가짜 신을 믿는 그들을 능가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진짜이지만 우리는 가짜인 것이다. 

하나님을 가짜 신(神)으로 만들지 말라 – 말세에는 가짜 신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많고 진짜 신을 가짜처럼 믿는 사람이 많다. 거짓 선지자가 많고 참 선지자가 적은 시대, 쭉정이가 많고 알곡이 적은 시대,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종말시대이다. 예배가 진짜 예배냐 가짜 예배냐 구원이 확실한 사람보다 불확실한 사람이 많고 천국이 확실한 사람보다 불확실한 사람이 많은 것이 종말이다. 가짜 신앙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무능한 신(神)으로 만들지 말라 – 죽은 신은 무능한 존재요 살아 있는 신은 전능한 존재다. 죽은 믿음이 있고 산믿음이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믿음에 의하여 역사하신다. 죽은 믿음은 죽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다. 살아있는 믿음만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살아있는 하나님은 시간을 구별하지 않고 장소를 구별하지 않고 역사하신다.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행동하는 믿음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 – 불구덩이에 던지는 화형으로 위협하는 느부갓네살의 위협에 굴복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형통하고 승리하고 축복받는 경우에도 하나님을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 실패하고 고난 당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그야말로 놀라운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 – 하나님이 인간의 수단인가 목적인가. 자칫 믿음이 하나님을 인간의 문제 해결의 수단에 머물러 있다면 속히 시정할 일이다. 인본적인 종교의 특징이 있다. 철저히 인간 자신의 문제 해결이 목적이 되고 신(神)은 그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신의 존재를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우상 종교의 특징이며 신의 존재가 목적이 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본 종교의 특징이다. 성공이 아닌 실패에서 축복이 아닌 고난 속에서 오히려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된다.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 –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어떻게 섬기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섬김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죽은 믿음인가 산 믿음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도 감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상실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 당해도 감사할 수 있는가. 천국을 위해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가, 하나님이 수단 아닌 목적이라고 하면 이모든 것이 당연 해야 한다. 

우리의 섬김의 확실성 – 우리의 섬김의 확실성 여부가 하나님의 존재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 자신의 존재를 결정한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 여부가 나의 미래의 확실성을 결정한다. 불확실한 순종은 축복을 확실히 불가능하게 하고 불확실한 믿음은 구원을 확실히 불가능하게 하고 불확실한 기도는 응답을 확실히 불가능하게 한다.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는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밖에 계신 교회였다. 불확실은 불가능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