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함정(오해) (막12:23-27)
사두개인의 오해 –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이 부활의 허구를 증명하기 위한 질문이 차례로 죽은 칠 형제와 결혼한 여인이 부활 후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대답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여 오해 했다’는 것이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시종일관 그들의 논리와 교리를 근거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이단시 했다. 당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오해했다. 결국 예수님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처형한 것이 십자가 사건이었다.
생각과 생활의 오해 –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귀가하는 길에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 버렸던 일이 있다. 생각 속에는 일행 중에 있는 줄로 알았으나 실제는 없었던 것이다. 생각 속에는 예수님이 있어도 생활 속에는 예수님이 없는 삶을 말한다. 반석 위의 집은 말씀을 듣고 행한 사람, 모래 위의 집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은 사람이다. 생각에는 말씀이 있었으나 생활 속에는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각과 생활의 오해 – 구원은 이론이 아니며 실제이다. 영혼의 구원과 육의 구원이며 현재 구원과 내세 구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이 아니며 실제요 능력이며 생명이다. 현재 확인되는 구원이 내세에도 확인되는 구원이다. 현재에 확인되지 않고 미래에 죽은 후에야 확인되는 구원은 비현실적 구원이다. 말씀은 지금도 역사하고 미래도 역사한다. 하나님의 존재가 지금도 확인되고 미래도 확인된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믿음이 미래도 확실한 믿음이다.
선택과 필수의 오해 – 구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 문제다. 구원은 생존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구원이 필수라고 하면 교회가 예배가 기도가 말씀이 필수인 것이다. 구원은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문제이다. 간접적이고 단체적인 문제가 아니다. 면제와 실례, 실수가 허용 되지 않은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과 형편이 용납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에 어떠한 핑계와 변명이 허용되지 않는다.
선택과 필수의 오해 – 구원은 필수인 것을 인정하지만 교회 생활,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 봉사 생활은 선택이 허용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함정이 있다. 구원은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교회문제, 예배문제, 기도문제, 순종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구원에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예배도 말씀도 기도도 충성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절대적이라면 그의 말씀도 절대적인 것이다. 예배도 기도도 절대적인 것이다.
목표와 출발의 오해 – 성도의 삶은 언제 시작되는가. 교회 출석부터인가 아니다. 구원부터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으로서 출발은 구원이 확정되는 순간부터이다. 구원이 출발 문제인가 목표 문제인가 성도로서의 삶의 출발은 교회 출석이 아니라 구원이다. 구원은 목표가 아니라 출발이다. 구원 받지 못한 교회 생활은 출발 준비 기간이다. 구원받는 순간 성도의 사람이 시작되는 것이다.
목표와 출발의 오해 – 광야 생활을 보면 이해가 쉽다. 광야 생활에 있어 순종은 목표가 출발이다. 광야의 시작은 구름(불)기둥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출발이 된다. 순종이 출발이 되어 광야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순종이 안되면 광야의 생존은 하루도 불가능하다. 순종으로 시작되고 순종으로 끝나는 것이 광야 생활이며 신앙생활이다. 순종은 인생의 시작 순간부터 시작되어 인생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의 오해 – 열심히 봉사하며 사역에 바쁜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일을 누구보다 많이 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소홀하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 때문에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이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이 있지만 충성이 하나님 관계를 무시한 충성을 말하지 않는다.
맹신과 맹종의 오해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규범을 기준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자신의 목적의 합리화를 위해 말씀을 인용했다. 맹신하지 않고 맹종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오류는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 인간적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적 해석에 의한 신앙 생활은 종교 생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