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37-40)
하나님의 진행의 불가항력성 –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43:13) 창조주의 행하심을 막을 수 있는 피조물은 없다. 쉬운 예로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 1,670Km(초속465m)이다. 이것을 정지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정지는 고사하고 그 원심력에 의하여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 것이 기적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행하심은 불가항력적이다.
두 가지 반응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 환영하는 반응과 거부하는 반응이다. 불신자의 반응과 신장의 반응이 아니라 신자 가운데에서 상반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제자들과 그리고 바리새인들이다. 같은 예수님을 대하는 반응이 극과 극인 것이다. 롬1:28에서 하나님을 싫어하는 상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고 시37:4 여호와를 기뻐하는 반응이 있다.
반응의 두 가지 기능 – 반응은 첫째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말씀을 받는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 속한 자와 속하지 아니한 자, 진리의 영에 속한 자, 미혹의 영에 속한 자가 증명된다. 또한 반응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가 결정된다. 남의 행위와 반응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 선택이 아닌 강요된 불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씀(명령) 거부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 주님의 입성을 환영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시기하며 비난하는 바리세인에게 너희가 환영하지 않으면 이 돌들을 명하여 소리지르게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하박국 선지자를 통하여 BC 600년전 예언된 말씀이다. 하나님 존재와 그분의 섭리를 막을 수 있는가 사43:13에서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인간의 무지에 대한 표현이 있다. 인간이 가진 지식이 해변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의 한 알의 모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거부할 수 있는가 – 창조주에 의하여 존재하는 피조물이 창조주의 명령과 지시, 계획과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가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 말씀은 천지를 있게 할 수도 없게 할 수도 있다.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을 거부할 수 있다는 착각 이야말로 엄청난 어리석음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이 증명된다.
결과적 존재가 원인적 존재를 거부할 수 있는가 – 하나님은 창조주요 원인적 존재다. 피조물은 그 원인에 의하여 존재한다. 부모에 의하여 자녀가 존재하고 목자에 의하여 양이 존재하고 뿌리에 의하여 꽃이 존재한다. 꽃이 뿌리를 거부하고 양이 목자를 거부하고 자녀가 부모를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이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든 안하든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다.
거부하는 사람과 돌의 공통점 – 소리치지 않는 사람과 소리치지 못하는 사람과의 공통점이 있다. 소리치지 못하는 돌은 생명이 없고 능력이 없고 지식이 없어서 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소리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있음에도 능력이 있음에도 지식이 있음에도 안하는 것이다.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의 차이가 있는가 결과는 동일하다.
거부하는 사람과 돌의 공통점 –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일하다. 건강이 있어도 하지 않으면 건강이 없는 것과 같고 물질이 있어도 베풀고 드리지 않으면 물질이 없는 것과 같고 눈이 있어도 눈감고 있으면 눈이 없는 것과 같다. 먹을 것이 없거나 먹을 수 없거나 굶어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교회 다닌다고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사용 불가능한 이유와 가능한 이유의 차이 – 소리치지 않는 사람을 대신하여 돌이 소리치게 하시겠다는 말씀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못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지식, 자기 기준, 자기 고집, 자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다. 돌은 자기 지식이 자기 기준이 자기 고집이 없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자를 약한 자를 없는 자를 쓰시는 이유다.
돌의 역할(타의성) – (순종)돌이 쓰임 받는 이유가 있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쓰임 받는다. 돌은 자기 의지가 없다. 주인의 뜻과 결정, 주인의 손에 의하여 그 때 그 곳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도 결정도 아니다. 철저히 타의(주인)에 의하여 쓰임 받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 그 이유가 된다.
돌의 역할(불변성) – (신뢰)돌의 특징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기념비로 건축재로 쓰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주인의 손에 의하여 그 돌담이 만들어진 때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 자리를 지킬 것이 확실한 것이 돌의 특징이다. 하나님은 친히 그 돌에 십계명을 새겨서 택한 백성에게 주셨다. 돌은 부서지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돌의 역할(현재성) – (생명)하나님의 영원하심은 영원히 현재를 말한다. 영적 존재의 특징은 현재성에 있다. 하나님의 현재성과 구원의 현재성이 일치한다. 하나님과 현재적 일치가 가능한 존재가 영적 존재이며 바로 돌의 특징을 가진다. 신앙의 유효와 무효는 현재성에 있다. 현재적이지 않으면 결코 유효하지 않다. 하나님의 현재성은 영원한 은혜의 특징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