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5:1-7)

하나님의 시작은 언약의 시작이다 – 인생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시작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1:1) 에덴의 시작은 선악과 언약으로 시작되었고 광야의 시작은 십계명 언약의 시작으로 된다. 언약의 내용은 생사의 문제에 있다. 선악과 언약 역시 말씀대로 하면 살고 안하면 죽는 것이다. 십계명 언약도 생사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생사의 문제 해결에 있다. 인생 자체가 먹고 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다. 신앙 생활의 핵심 목적은 구원의 문제, 생사의 문제에 있다. 

출애굽기의 십계명 언약 – 출애굽 직 후 광야 여정 출발 전에 십계명 언약을 체결하시고 본격적인 출발이 된다.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광야의 상황은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다. 광야 자체의 특징은 아무것도 없는 불가능한 환경이며 인간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계명을 지키는 길 뿐 이다. 광야에서의 생존은 부인 할 수 없이 하나님 뿐 이라는 사실이다. 

광야에서 확인 되는 것 –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다. 십계명의 제 4 계명에서 하나님 정체성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소개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는 환경이 광야라는 사실이다. 주기도문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지는 것이다. 광야라는 땅 역시 하나님의 뜻(십계명)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땅은 두 곳이 있다. 인생 자신이 땅(흙)이며 살고 있는 장소가 땅이다. 

광야의 훈련 – 광야에서 확인되는 절대적 두가지 사실은 절대 가능한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과 절대 불가능한 존재인 사람이 확인된다. 이것이 광야에서 훈련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병사는 전쟁의 필연성 때문에 훈련이 필수적인 문제요 의무이다. 병사의 존재 목적은 생명걸고 싸워야 하는 데 있다. 전쟁이 생사를 걸어야 하는 문제라면 훈련 역시 생사를 걸어야 하는 문제다. 광야는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다. 말씀대로 안하면, 기도 안하면, 예배 안드리면 당장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명기의 십계명 언약 – 출애굽기의 십계명이 아무것도 없는 광야를 전제로 주어진 것인데 반해 신명기 십계명은 모든 것이 있는 가나안을 전제로 주어진 것이다. 아무것도 없을 때와 모든 것이 있을 때와 달라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십계명 언약 준수(말씀 순종)와 하나님에 대한 태도(자세)는 절대 달라지면 안된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없으면 안되는 순종과 믿음, 예배 훈련의 목적은 지금부터 끝까지 달라지면 안되는 하나님과의 관계 훈련에 있었다.

가나안 환경 –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환경인데 반해 가나안은 모든 것이 있는 환경이며 광야는 안보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였는데 가나안은 보이는 우상과의 문제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안보이는 존재의 영향보다 보이는 존재의 영향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보이는 것을 주신 안보이는 하나님보다 안보이는 하나님이 주신 보이는 것들이 더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충돌이 평생 따라 다니는 것이 인생의 숙제다. 

마음의 변질 – 하나님께서 광야를 마치고 가나안 들어가기 직전 신명기를 통하여 십계명을 재차 강조하며 우려하시는 바가 너희 마음이 교만 하여져서 내 손의 힘과 능력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고 착각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상황은 달라져도 마음은 달라지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자세 말씀에 자세 예배에 대한 자세는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상황이 수없이 달라져도 하나님은 달라진 적이 없다. 우리 역시 그래야 한다. 

위험한 환경 – 신8:15에서 위험한 광야(불뱀과 전갈과 물 없는 건조한 땅)를 지나게 하신 연단의 이유가 가나안 생활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위험한 것은 육신적 위험의 광야가 아니라 영적 위험이 있는 가나안이기 때문이다. 육신적 위험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 위험이 더 치명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이 풍족한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 – 하나님이 없어도 될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자세가 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 가나안 사람이 섬기는 보이는 신들(우상)이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신으로 느껴진다.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볼 때 보암직하고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보이는 뱀의 말과 선악과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보다 보이는 신이 주는 영향이 더 실감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