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0:4-6)

말씀은 평가 분석 대상이 아니라 실행해야 할 명령이다 – 십계명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형으로 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 태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말씀을 인간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검토해보는 하나님의 의견이나 제안이 아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시며 생명과 능력이다. 천지만물의 근원이 말씀이다

말씀은 다양한 수단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수단이다 –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은 많은 길, 많은 진리, 많은 생명 중에 하나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길, 하나의 진리,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유일한 하나님의 유일한 생명, 유일한 진리, 유일한 길을 말한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고 타협의 여지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분 하나님,그의 말씀 뿐이다. 

말씀은 주어진 순간 이미 결과가 결정되어 있다 – 말씀은 처음부터 끝이 정해져 있다.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즉시로 빛이 창조되고 즉시로 하늘과 땅 만물의 창조되었다.즉시 현실이 되고 가시화 되었다.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현실이 된다. (요3:16-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의도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다. 종교 생활을 하는 모든 종교인들의 목적은 우상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유익을 위해서다. 말씀은 인간의 구원에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구원받고 하나님이 축복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적은 인간 구원, 축복이지만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라는 것이다. 

나를 비겨서 은과 금으로 신상을 만들지 말라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의 특성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고 오해와 착각이 존재한다. 신학이 존재하게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심각한 오류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정체성이 인간의 지식의 범주 안에 있게 되는 위험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아시는 하나님이 보이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안보이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내는 시도 – 그 시도가 결국 많은 종교가 등장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보이는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되는 하나님, 인간의 지식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나님, 인간의 수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나님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 능력, 계산, 계획안에 갇혀 있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결코 성경적 신앙이 아니다. 

인본적 신앙은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 인본적 신앙은 내 기준 내 수준에 의한 신앙 생활을 한다. 신앙의 목적이 철저히내 목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상 숭배와 같다. 내 가치 기준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 하나님의 가치보다 인간의 가치가 더 가치있는 일이 된다. 하나님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에 못미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신본적 신앙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 신본적 신앙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수준에 의한 신앙 생활을 하고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 기준의 선택 기준에 의한 삶을 산다. 상황과 환경이 말씀대로의 삶을 어렵게 해도 제한 받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그대로 행한다. 

Original 하나님과 Imitation 하나님 – “나를 비겨서”라는 표현은 진짜와 비슷함을 말한다. 형편과 필요에 따라 똑같이 못하고, 비슷하게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하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믿는 척,구원 받은 척하는 것이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남유다로 절기를 지키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 대신 벧엘에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기를 7월15일 대신 8월15일로 하여 하나님을 선기는 것처럼 속이는 행위를 하게 한다. 

제단 쌓은 돌은 다듬은 돌로 하지 말고 다듬지 않은 돌로 하라 –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 더하는 것도 빼는 것도 절대 금지하는 것이다. 예배 생활과 교회 생활이 가감되고 타협된 말씀의 기준으로 된다면 하나님의 예배도 교회도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말씀의 가감과 변질을 당연시 하지 말고 철저히 말씀 그대로- 말씀을 수단화 하지 말고 목표화 해야 한다. 

우상의 표리부동 – 우상을 만들 때 재료를 나무 혹은 돌 같은 것으로 하고 표면은 화려하게 은 금으로 코팅하여 신상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겉은 은과 금으로 가치있게 보여도 속은 가치없는 나무 혹은 돌덩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 기도 순종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나를 위해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우상은 거짓 신이다 – 만들어진 가짜 신을 진짜 신으로 섬기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불가항력으로 불가피하게 가짜 신을 만든 것이 아니다. 자기의 목적 때문에 만들고 섬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알고 있다. 가짜를 진짜 신처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뒤에 숨어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갈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