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내내 강의실에 있는 줄 조차 몰랐던 존재감 제로의 학생이 교수실로 찾아와 학업을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상담한다면 어떨까. ‘프레즌스’의 저자 ‘에이미 커디’는 고개를 숙인 채 불안에 떠는 학생 얼굴에서 자신을 보았다. 열아홉 살에 자동차 사고로 뇌를 크게 다친 후, 기억력 장애로 움츠러들던 과거 말이다. 그녀의 해법은 의외였다. “너 자신의 말을 듣지 말라”였기 때문이다. 내면과 다른 행동을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기억력 장애를 지닌 채 그녀가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된 주문으로, “행복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노래해서 행복한 것이다”의 실천판이었다. 다만 타인 뿐 아니라 자신까지 속이려면 더 치밀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녀는 학생에게 움츠러든 어깨와 가슴을 활짝 펴고, 허리부터 바로 세우라고 충고한다.
‘프레즌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 나를 속여라. 내 감정을 속여라. 그러기 위해 더 강력한 신체 언어를 구사하라!” 이 말은 내게 “너 자신이 되라”가 최악의 조언이라고 말한 애덤 그랜트의 충고를 연상시켰다. 우리가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진정성을 찾으란 말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찾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외면을 먼저 찾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중요한 면접이나 시험 직전, 가슴을 활짝 편 ‘원더 우먼’ 자세를 2분만 지속해도 실제 힘이 더 세진 것처럼 느끼고,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없는 장애인들조차 자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이것의 의학 버전은 보톡스로, 더 이상 미간과 입꼬리를 찡그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우울증 지수가 낮아졌다는 연구가 있다. 장시간 스마트폰 사용으로 생기는 ‘거북목’ 현상이 결단력과 과단성을 감소시킨다는 연구는 어떤가.
솔루션으로 나는 하늘 보기를 권한다. 숙이고 있는 고개를 들어 올리는 행위만으로 어깨와 가슴이 펴진다. 가을 하늘의 청명함은 덤이다. 일부러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야 행동이 바뀌는 것이 맞다. 그러나 행동을 바꾸어 생각을 바꾸는 것은 매우 강력하고 신속한 방법이다.
자기 감정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자기 감정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것이 감정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이성 안에 존재하는 지정의의 작용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성장 과정에서 받은 영향으로 자기 안에 형성된 왜곡된 생각의 형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순서로 본다면 내적 치유가 먼저라는 말이 맞는다. 그러나 내적 치유를 시도했으나 일시적인 효과는 있는 것 같았으나 결국은 치유 전 상태로 회귀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문제는 감정의 변화가 이성적 결단으로 연결되어 행동의 변화로 실천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정의 변화가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내면의 변화에 의하여 외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감정의 변화를 지속적인 변화로 유지 하는 것은 이성의 결단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내면의 변화가 신속치 못한 것은 모두가 경험하는 바다.
이것을 신속히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외면의 변화부터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적 감정의 상태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면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마음이 변치 않고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렇게 강행하면 생각하지 않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내면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종은 동의하는 상태에서의 순종을 말하기도 하지만 동의가 안되는 상태에서의 복종이 보다 강력한 자기 변화의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동의한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순종할 필요가 있다. 안되는 순종이 신속히 변화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짧은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순종하면 반드시 이해가 되고 믿어지게 된다. 이해가 아니되고 믿어지지 않던 말씀이 기적같이 믿어지는 것이다. 이해가 먼저가 아니다. 순종이 먼저다. 이해가 먼저가 아니다. 행동이 먼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