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7:1)
여호와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여호와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 인간이 세우려는 것, 지키려는 것은 다양하다. 세워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이 많다. 그 가운데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있다. 생명적인 것이다. 구원이다. 구원이 세워져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구원은 내가 지키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다양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 관계가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 관계를 지키는 네 가지 항목을 살펴본다.
자세(교만한 자세, 겸손한 자세) – 교만한 자세는 하나님과 대적 관계에 있는 자세이며 겸손한 자세는 하나님께 순복 하는 자세이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는 대적하신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람이며 마귀에게는 순복하는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께는 순복하는 사람이며 마귀에게는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이냐 마귀 편에 있는 사람이냐는 교만과 겸손이 중명한다. (약4:6-7) (벧전5:5-6)
자세(교만한 자세, 겸손한 자세) – 교만은 마귀의 정체성이다. 하나님보다 높은 곳에 보좌를 정하려 했던 자가 마귀이다.(사14:13-14) 하나님보다 높은 구름에 올라 가장 높은 자와 비기려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명분이 하나님 처럼 되리라였다. 축복받을 때 조심할 것이 있는데 교만해지는 것이다.(신8:13-14) (겔28:5-6) 교만하게 되면 결국 마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잠18:123)
기준(하나님의 의, 자기의) – 롬10:2-3에서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의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의를 무너뜨리게 되고 하나님의 의를 세우려면 자기의를 무너뜨려야 한다. 자기의를 세우는 사람은자기의를 옳게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옳지 않게 보는 것이다. 자신의 불순종을 틀린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기준(하나님의 의, 자기의) – 자기의의 본질은 선악과 사건의 핵심 문제이다. 마귀의 유혹의 핵심이 “하나님처럼 되리라”였다.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간의 기준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회개의 본질 역시 자기의를 해결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신다.(요일1:9) 무엇이 불의인가 자기의이다. 하나님의 의가 정의라고 하면 자기의는 불의이며 불법인것이다. 이것을 자백해야 한다.
기초(반석 위의 집,모래 위의 집) – (마7:24-27)기초가 반석이냐 모래냐의 문제에서 (눅6:48-49)에서는 흙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주초를 놓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흙의 제거는 인간의 고정관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고방식을 제거하는 작업을 말한다. 말씀을 방해하는 인간의 고정관념이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치열한 싸움이 필요하다. 제자도를 말씀하실 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전제하시는 이유가 그것이다.
기초(반석 위의 집, 모래 위의 집) – 홍수가 발생하면 무너지는 집과 무너지지 않는 집이 나타난다. 건물의 붕괴를 결정하는 것은 건물의 재료나 구조가 아니다. 기초에 있다. 기초가 건물을 붙잡아 주는 것이다. 말씀 위에 지은 집은 말씀이 붙잡아 주고 생각 위에 지은 집은 생각이 붙잡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보장하는 인생과 사람의 생각이 보장하는 인생이 있다. 말씀은 천지가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다.
의지의 대상(하나님 의지, 사람 의지) – 사31:1-3에서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는 하나님도 아니고 신도 아닌 애굽을 의지하는 자는 돕는 애굽도 도움 받는 자도 함께 망하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 렘42:16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의지하여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면 칼이 따라가고 기근도 따라가서 정녕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신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보이는 사람과 물질을 의지하기 쉬우나 보이는 존재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가 영원한 존재이다.
의지의 대상(하나님 의지, 사람 의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사람을 의지하는 삶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산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사람을 좋게하랴 하나님을 좋게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한다. 삶의 전체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의 기쁨을 추구하는 삶이 하나님의 보장이 함께하는 삶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