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도전 했던 골리앗은 장대한 신장의 소유자이다. 가나안 족속 중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의 후예인 골리앗은 자그마치 키가 2m 96cm 였다. 거인의 호령 앞에 겁을 먹고 숨죽이고 있는 현장에 생각지 못한 광경이 벌어진다. 갑자기 나타나 골리앗을 능가하는 배짱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바로 소년 다윗이다. 육신적 거인 앞에서 큰 소리 치는 다윗은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담대함은 골리앗을 능가한다. 골리앗은 육신적 거인이지만 다윗은 영적 거인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거인들의 명단과 그들의 발자취가 기록되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를 주도하시는과정에서 반드시 택하여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의 특징이 있다.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인들이다. 믿음의 사람은 도전의 대상이 다르다. 기드온의 300 용사가 있다. 그들은 300명의 군사로 13만 5천명의 미디안 군대를 격파했다.
모세는 혈혈단신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애굽 바로왕 앞에 나아가 ‘내 백성을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만일 말을 듣지 아니하면 애굽은 초토화될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한다. 지팡이 하나 믿고 큰 소리 치는 모세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바로가 코웃음 쳤다. 모세 뿐 아니라 모세를 보낸 하나님을 비웃었다. 모세가 보여주는 이적을 바로의 술사들도 한 두 번 따라 했다. 의기양양한 바로는 조롱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세번째 재앙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더더욱 희한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 거주 지역과 애굽인 거주지역이 칼로 자른 것처럼 나뉘어 애굽인 거주 지역에만 치명적인 재앙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온갖 재앙이 애굽인 거주 지역에만 일어나는 것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나는 것이다. 급기야는 마지막 장자 재앙 앞에 바로가 굴복하여 모세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 내어주게 된다.
모세 한 사람이 애굽을 굴복 시킨 것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모세뿐 아니라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며 계획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실제적으로 애굽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애굽을 도전하고 그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해야한다. 육신적으로 모세는 바로 왕에 비해 지극히 작은 존재지만 영적으로는 지극히 큰 존재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마찬가지다. 소년의 나이에 조국이 강대국에 짓밟히고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포로 신세가 되어 노예로 끌려간다. 처참한 운명 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우상에게 목숨을 걸고 절하지 않아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히 대답한다. 당장 불구덩이에 집어 넣으라고 큰소리친다. 하나님이 얼마든지 불구덩이에서 건져 내신다고 확신 있게 말한다.
다니엘 세 친구의 당당한 답변은 이 광경을 지켜 보던 군중 뿐 아니라 이 소문이 바벨론 온 나라에 퍼져 모든 백성을 충격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포로 신세에 불과한 세 청년의 신앙의 기개와 기세는 세계를 정복한 바벨론 제국의 위세를 제압할 정도로 대단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위대한 만큼 위대하고 하나님의 위세만큼 위세가 당당하다. 믿음의 거인은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없는 것이다. 믿음의 막강함은 하나님의 막강함과 동일하다.
물리적 우세를 전능한 능력으로 아는 어리석은 삶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인생의 모습이다. 육신적으로 보 잘 것 없어도 하나님의 신이 충만한 사람은 인간의 차원이 아닌 하나님 차원의 존재의 삶을 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일지라도 가장 큰 존재이다. 그를 당할 자가 없다. 물질 풍요가 영적 풍요와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물질 풍요와 관계없이 영적 파산자가 의외로 많다. 육신적 극빈자라해도 영적 거부가 있다.
없는 것과 있는 것, 강하고 약함이 물리적인 것에 있지 않다. 영적인 것에 있다. 육적 거인이 큰 자가 아니고 영적 거인이 큰 자이다. 육적 기준의 거인과 소인이 아니라 영적 기준의 거인과 소인이 진정한 큰 자와 작은 자를 구별한다. 굳이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를 들어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감히 인간적인 것들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 (고전1:25-29)
믿음의 삶은 위대한 삶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인생이 왜 그렇게 왜소하고 무력하게 사는지 궁금하다. 왜 문제 앞에서 벌벌 떨며 사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하나님의 자녀가 맞기는 맞나 의문이 간다. 아버지가 왕인 사람이 구걸하며 얻어먹고 깡패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비참하게 사는 것을 보았는가. 진짜 그렇다면 아버지가 왕이 아니고 거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