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글도 모르시는 당신에게 40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드립니다. 어머니, 어머니란 이름만 입 속으로 되내어도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홀로 가슴을 움켜쥡니다. 슬픔이 나의 생활이 되어버린 요즘 이 딸이 한 평생 걸을 수 없듯이 당신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서럽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감사의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더 허락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이승을 떠나는 그 날까지 아니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걷어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조금 전 당신은 귀저기 갈기를 완강히 거부하시며 아직 조금 남아있는 한 쪽 발의 힘으로 마구 발길질을 하시며 발버둥을 치셨지요. 그런 당신을 소아마비로 양쪽다리를 못 쓰는 저의 몸으로 한참을 실랑이 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 치시던 당신이 이 딸과 실랑이하기도 지치셨는지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벽에 기대앉아 주름으로 거북이 등처럼 되어 버린 당신이 너무도 작아져 버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주르르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습니다. 저의 서러움 토해내는 소리에 주무시는 줄 알았던 당신이 휑하니 깊게 패인 눈을 뜨시며 깜짝 놀라 물으셨죠?
“아가, 왜 울어? 걷고 싶어서 우는 거니? 아가 울지 마라 내 다리 빌려 줄 테니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이 할미 가슴이 너무 아파 죽겠어.” 하시며 연신 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감춰뒀던 것인지 침대 매트 밑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어 제 입속에 넣어주셨지요. 가엾은 당신, 이 세상 어느 부모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지 않은 분 없겠지만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런 당신이기에 이 딸의 가슴이 더욱 아프고 서럽습니다. 12년을 중풍으로 누워있던 남편과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딸을 키우며 당신은 열 손가락을 몇 번을 꼽았다 펴야할 정도로 안 해본 장사가 없으셨지요.
그 세월 동안 당신이 겪어온 삶의 힘겨움을 어찌 제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저는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힘겹게 살아오신 불쌍한 당신께 정말 효도 많이 하자고요. 그러나 당신의 고생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낳은 딸아이가 백혈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수 없이 드나들었고, 오랜 세월 병원에서 지내야했기에 그 세월동안 당신은 걷지 못하는 딸 대신 잠시도 바닥에 누워 있지 않는 손녀를 등에 업고 허리뼈가 물러나는 줄도 모르고 지내셨습니다.
회생이 힘들겠다는 의사 말에 어머니 당신은 내 목숨 거둬가고 우리 손녀 살려달라고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셨습니다. 그날의 당신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런 당신의 눈물겨운 간병 덕으로 저의 딸은 그 무서운 병마에게 이겨 지금은 건강한 대학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 귀에 입을 대고 “할머니 사랑 한다”라고 속삭이는데 야속한 당신은 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시는지요? 저를 20년을 업어 키우셨고 당신 몸보다 더욱 커버린 이 딸을 업고 세상 구경 시켜 주신다고 남산이며 장충단공원도 수없이 가셨습니다.
어머니, 생각나세요? 당신과 제가 40년을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 매봉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는 것, 과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인데 봄이면 유난히도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곤했지요. 살을 에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벌거숭이산은 노란 개나리꽃으로 옷을 입고, 군데군데 진달래와 벚꽃이 어우러지면 이 세상 그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그 풍경과 같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제 나이 예닐곱 살 때부터 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봄날 외출했다 돌아오신 당신이 다짜고짜 저에게 등을 업히라고 하셨습니다. 푸른 산이 아닌 노란 산을 구경시켜 주신다며, 온 산이 노란 개나리꽃으로 덥혀 있는 것을 당신 혼자만 보고, 걷지 못해 늘 방에서 세월 보내는 딸이 당신은 안타까우셨던 거지요.
그런데 평소에는 저를 잘 업으셨던 당신이 그 날은 어찌 된 일인지 대문 밖에서 몇 발자국 걷더니 무엇엔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이마를 다쳐 많은 피를 흘렸고, 당신은 피를 흘리는 저를 부둥켜안고 “미안해, 미안해” 하며 우셨습니다. 저는 상처의 아픔보다 어린 나이에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서럽게 울었지요. 어머니와 저는 그렇게 길바닥에 주저앉아 얼마를 많이 울었던가요? 그 다음 날부터 당신은 혼자 산에 올라가 노란 개나리 한 움큼에다 진달래 몇 송이를 섞어 꺾어 와서는 꽃병 대신 우리 집 마당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항아리에다가 꽂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길 산에 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카시아 꽃이 피면 꽃을 따와서는 먹어보라고 성화도 하셨고, 봉숭아 꽃이 피면 그 꽃을 따다 아주까리 잎으로 손톱을 감싸 물도 들여 주셨지요. 첫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조그마한 계집아이에게 첫서리가 내릴 때 까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씀도 해주시며…개나리가 피었던 산에 나무들이 빨갛게 고운 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그 나무 잎을 주워와 고이고이 책갈피에 끼워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 당신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유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제 삶의 이정표이자 수호천사였습니다. 저는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이 저를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대신 어머니라는 이름의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다고. 어머니, 당신에게 처음 드리는 이 딸의 편지 비록 눈으로는 읽지 못하셔도 마음으로 읽어 주세요. 어머니,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의 딸임을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