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셉 마테라 목사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는 10가지 유형'을 게재했다. 마테라 박사는 "성경은 때때로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던진다.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 모습과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를 요한계시록 3장 17절('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너는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은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하신 이 말씀은, 자기 확신 속에 빠진 신자가 하나님의 눈에는 전혀 다른 존재로 비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많은 자칭 신자들이 구원받았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믿음의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영적 자만에 빠져 있다는 것"이라며 기독교인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10가지 흔한 방식과 이에 대한 성경적 진단을 제시했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1. '종교인'인가, 진정 '거듭난' 사람인가? 요한복음 3장 3-8절에서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선포하신다. 단지 교회 출석이나 도덕성, 종교적 열심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내적 변화만이 구원의 참 증거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장로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책망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이유이다.

2. 구원은 받았으나, 성화는 멈췄는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바울은 "온전히 성화되기를" 기도한다. 구원은 순간적이지만, 성화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습관, 언어, 관계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변화가 없다면 성화 없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수 있다. 구원이 출생이라면 성화는 성장이다. 출생이 사실이라면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이 출생을 증명한다.

3. 하나님 나라 '근처'에만 있는가? 마가복음 12장 34절에서 예수는 한 율법학자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가까운 것"과 "들어간 것"은 다르다. 단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태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당시 바리새인,서기관,대제사장들은 스스로 완벽한 도덕적 종교적 율법적 완전한 자로 자처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과 완벽하게 관계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4. 예언을 말하지만 삶은 불경건한가? 마태복음 7장 15-16절은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고 경고한다. 은사는 경건함의 보증이 아니다. 공적인 사역이 은밀한 개인적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은사는 위험한 가짜일 수 있다. 한때는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 많은 기적을 나타내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현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기적은 행하지만, 그리스도와 관계는 어떠한가?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 예수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신다. 초자연적 능력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보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신앙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관계에서 나타난다. 초자연적인 능력은 제한적이지만 사단도 가능하다. 능력에 앞서 하나님 관계가 증명되어야 한다.

6. 신앙에 안주하고 있는가? 마태복음 5장 6절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 없이 현 상태에 만족하는 것은 영적 속임 일 수 있다. 현상유지는 후퇴이며 퇴보이다. 끊임없는 갈망이 없다면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육신도 영혼도 주리고 목마름이 있을 때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7. 하나님과 대화 중인가, 믿음을 해체 중인가? 이사야 1장 18절은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한다. 하나님은 진실한 질문은 환영하시지만, 반역적인 '믿음 해체'는 경계하신다. 야곱처럼 씨름하는 믿음인가, 가룟 유다처럼 떠나는 믿음인가를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대화의 유무는 믿음의 상태를 정확히 증명한다.

8. 예수가 '삶의 일부'인가, '삶 그 자체'인가? 골로새서 3장 4절은 "그리스도는 너희 생명이시니"라고 선포한다. 예수가 단지 일요일의 중심일 뿐이라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구원이 맞는다면 예수가 일부가 아니라 전부일 수밖에 없다. 주일뿐 아니라 매일 매일이 주일인 삶을 살게 된다.

9. '죄인 기도'만으로 구원받았다고 믿는가? 마태복음 7장 13-14절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단지 기도를 따라 했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참된 구원은 회개와 믿음, 변화된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 변화된 삶은 타협을 허락지 않는 삶을 산다. 아니 타협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좁은 문이다.

10.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비윤리를 정당화하고 있는가?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랑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게 만든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우상숭배다. 거룩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자기기만은 신자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교묘하고 위험한 적이다. 아무리 진지해 보여도,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울 수 있지만, 실제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