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4:10-13
시각과 생각의 중요성 –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당황스런 상황보다 혼란스런 생각이 더 심각한 문제다. 상황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올바른 처방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가 있고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같은 상황(풍랑)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 볼 때 바다 위로 걸어갔으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동시에
바다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파도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상태에 의하여 결과가 달라졌다.
같은 상황과 두 가지 시각 –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지파
대표들은 당연히 같은 상황을 보고 왔으나 보고 내용은 정반대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이기리라”고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으나 열
지파 대표들은 “능히 이기지 못하리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다. 긍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만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못 들어간다. 운명의 결정은 상황의 조건에 있지 않고 시각에 있다.
상황은 바꿀 수 없으나 생각은 바꿀 수 있다 – 언제 어디서나 상황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황을 바꾸라는 명령이나 지시를 하시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우리 자신을 바꾸기
위함이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하고 힘들어도 상황을 바꾸거나 피하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에 그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 의도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 상황의 목적이다.
상황은 바꿀 수 없으나 생각은 바꿀 수 있다 – 바꿀 수 없는 상항에서 바꾸어야 하는 나의 생각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상황이 막힌
상태일 때 하나님 관계에 막힘이 없는지 확인하여 막힘이 없으면 그 막힘은 하나님의 새로운 진행의 신호이다. 홍해가 그랬다. 그 막힘은
인간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육신의 시각으로는 막힌 것 같으나 열린 것이며 육신적으로는 열린 것 같으나 막힌
것인 경우가 있다. 인간은 상황을 바꾸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신다.
시각 결정과 생각 결정의 관계 – 보이는 것에 의하여 생각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보이는 것이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은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의하여 반응한다. 보이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보게 된다. 이미 경험한 기억이 보이는 것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다. 출14:12에서 애굽을 출발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보면
이미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각 결정과 생각 결정의 관계 – 시각 결정의 배경이 되는 생각의 결정은 현재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필요할
때- 유사시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 필요하지 않는 일상 생활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마12:34-35에서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일상적인 모든 삶이 내 안에 선을
쌓는 사간이 되고 또는 악을 쌓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운명의 결정은 상황에 있지 않고 생각에 있다 – 롬8:6에서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며 육의 생각은 사망”이다 마귀는 인간의 생각 속에
자신의 생각은 집어 넣는다.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어준 후 가룟유다는 드디어 예수님을 팔아 넘긴다. 베드로에게 역시
예수님을 앞을 가로막으며 사단에게 쓰임 받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칭찬 받아 마땅한 마리아의 옥합 사건을 가룟유다는 분노하며 책망한다.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
나의 생각을 누가 주장하는가 – 골3:15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빌2:13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요13:2에 ‘마귀가 벌써 가룟유다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구원을 정확히 표현하면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다. 누가 주인이냐가 구원을 증명한다. 주인이 누구냐가 그 마음과 생각을
누가 주장하느냐가 된다. 어떤 존재가 생각을 주장하느냐가 운명을 결정한다.
시각의 분별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시각에 따라 악과 선을
죄와 의를 교만과 겸손을 분별하게 된다. 그 시각은 생각 속에 가지고 있는 기준에 위하여 결정된다. 시각에 따라 악을 선으로 볼 수도 있고
선을 악으로 볼 수도 있다. 죄를 의로 볼 수도 의를 죄로 볼 수도 있다. 생각에 의한 시각이 분별을 결정하고 그 시각이 길을 결정한다.
길 확인 –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가고 있는 길이 있고 가지고 있는 길이 있다. 나의 길은 가고 있는 길이 아니고 가지고 있는 길이 나의
길이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길은 가고 있는 길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길이다. 시각의 길이 가고 있는 길이라고 하면 생각의 길이 가지고
있는 길이다. 상황의 길이 생각 속의 길과 일치가 되어야 그 길은 옳은 길이다. 생각 속에 원칙화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주신 레마의 말씀이 있다. 그 말씀에 상황의 길이 입증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