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4:10-12
홍해에 막힌 절체절명의 상황 –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되는 상황이 홍해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이다. 그야말로
PANIC에 빠진 그들의 비명과 절규는 충분히 이해 할만 하다.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상황에 놓여진 것은 인생의 여정에
진퇴양난과 사면초가의 상황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한다.


갈등의 필연성 – 갈등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갈등의 시간이 길어지느냐 짧아지느냐가 관건이다. 왜냐하면 갈등의 시간이
길수록 비생산적인 시간이 길어지고 생산적인 시간은 짧아진다. 반면에 갈증의 시간이 짧아질수록 생산적인 시간은 길어진다. 제한된
기간을 사는 인생에게 생산적인 시간과 비생산적인 시간은 반비례는 인생 성패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갈등 시간 단축의 조건 – 갈증 시간은 방황 시간이다. 방향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방황의 시간은 길어진다. 방향의 결정은 기준의 유무에
있다. 기준의 유무는 인생 전반의 계획과 설계에서 비롯된다. 인생의 계획과 설계는 인생 스스로의 계획이 있고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사람이 만든 계획은 사람이 이루고 하나님이 만든 계획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길의 상태와 방향 – 홍해에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부르짖으며 원망했다. 길의 문제는 길의 상태에 있지 않고
길의 방향에 있다. 길의 상태가 험한 상태 평탄한 상태 좁은 상태 넓은 상태인가가 아니라 방향이 옳은 방향인가 틀린 방향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길은 유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선택은 언제나 마지막이다.


방향의 설정과 인생 설계 – 인생 설계의 완전성이 방향의 완전성을 보장한다. 불완전한 설계는 불완전한 기준에 의한 진행이 된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설계에 의하여 산다는 것을 말한다. 상황과 환경 조건이 문제되는 사람은 자기 계획에 의하여 사는 것을
말하고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사는 사람이다.


같은 상황에서의 두 가지 방향 – 같은 상황이 같은 방향은 아니다. 같은 홍해 상황이 누구에게는 사는 방향이 되고 누구에게는 죽는 방향이
된다. 분명히 하나는 죽는 방향이고 하나는 사는 방향이다. 각자 사는 방향으로 혹은 죽는 방향으로 전망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가볼 수
없기 때문에 지금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누구의 인도를 따라왔고 따르고 있느냐를 확인하면 된다.


양의 길은 목자가 잘 안다 – 양의 길은 양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이나 양 자신보다 목자가 잘 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길은 백성
자신 보다 하나님이 잘 아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모세가 잘 안다.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길은 잘 아시는
하나님이 그의 종들을 통하여 인도하신다. 오늘 날도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 방향을 지시하는 기준이 된다.


갈등은 두 가지 선택의 충돌에 있다 – 모세를 통하여 주어지는 방향이 있고 바로가 말하는 방향이 있다. 모세의 말하는 방향을 따를 것인가
바로가 말하는 방향을 따를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모세의 방향과 바로의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모세의
명령을 선택하면 바로의 명령을 거부해야 하고 바로의 명령을 선택하면 모세의 말을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복과 마귀 대적의 함수 관계 – 약4:6-7에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라’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면 마귀를 거부하고 대적하게 되고 반대로 마귀에게 굴복하며 하나님을 거부하게
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마귀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다. 선악과 문제도 뱀의 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거부한 것이다.


방향 선택의 근본적 동기 – 모세로 대표되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길 것인지 바로 왕을 섬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누가 나의 왕이냐는 신앙
생활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항상 확인해야 하는 질문이다. 평생의 생계 문제의 근본 해결을 말씀하시면서 먼저 물으신 질문이 재물이
주인가 하나님이 주인인가 였다. 구원의 확증도 예수를 주로 고백 하느냐에 있다.


같은 현장에서의 다른 운명 – 절체절명의 홍해 현장이 사는 길이 되고 죽는 길이 되며 열린 길이 되고 닫힌 길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홍해 현장이 모세에게는 시작이 되고 바로에게는 끝이 된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홍해는 시작의 운명과 끝의 운명이 결정된다. 같은
전쟁에서 여호사밧은 살고 아합은 죽는다. 같은 전장에서 다윗은 승리자가 되고 골리앗은 패배자가 된다.


길 가는 방법 – 인생의 스케줄은 누가 만드는가 당연히 내가 만든다고 할 것이다. 나의 스케줄에 의하여 세상에 오지 않았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왔다. 인생 여정의 끝까지 동일하다. 길가는 기본 자세는 지속적이며 일관적이며 원칙적이며 최종적이어야 성공이
가능하다. 간헐적 부정기적 임의적인 자세는 성공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실천적 자세 – 예배 방향, 기도 방향, 말씀 순종 방향, 교회 생활 방향이 변함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호와를
신뢰하며 선지자를 신뢰하여 견고함과 형통함이 보장되어야 한다. 광야 행진의 질서가 좋은 본보기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