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준비에 대하여 재림하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마24장이다. 실천적 기준을 말씀하고 있다. 도망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준을 말씀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에서 말씀에 제시된 기준을 지킬 때에 준비된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다.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에 있다.
구원의 방향 – (유대에 있는 자는 산으로 도망하라) – 마24장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 말씀인 동시에 종말 시대를
사는 오늘의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로마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되었을 때, 유대인은 동원할 수 있는 어떤 수단으로도 구원이
불가능했다. 오직 유일하신 구원자이신 하나님 뿐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멸망과 절망의 구덩이에 빠진 인생의 구원의 손길은 위에 계신 하나님뿐이다.
영적 방향 —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 말며) – 지붕에 있는 이유는 기도와 영성 생활 때문이다. 유대인은 평평한 지붕에서
기도 시간을 가진다. 물건 때문에 기도를 중단하고 내려가는 일이 빈번하게 되면 영성의 수준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육신적인 일
때문에 기도 생활, 예배 생활, 말씀 생활이 중단되면 영적 수준이 내려가고 영적으로 침체된다. 내려가는 것은 쉬워도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지 않도록 해야한다.(갈3:3)
사명의 방향 – (밭에 있는 자는 돌이키지 말고) – 밭에 있는 자가 겉옷을 가질러 돌이키는 것은 일터를 떠나 외출하기 위해서다.
일꾼이 일터에 있지 않고 일터를 떠나 외출하는 일이 잦으면 결국 일에 대하여 소홀하게 된다. 사명의 기준은 자신의 위치에
철저한가이다. 목자가 들판의 양떼와 소떼 곁에 있지 않고 시내 거리를 배회한다면 사명에 충성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부는
가정에 있어야 하고 학생은 학교에 있어야 한다. (잠27:23, 눅9:62)
순종의 방향 – (아이 밴 자가 화가 있으리라) – 만삭이 된 사람은 움직임이 쉽지 않다. 몸이 비우기 전에는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
순종은 생각을 비우고 말씀을 받아 들여야 가능하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자기를 부인해야 십자가를 받아 들일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해야 말씀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신앙 생활의 본격적인 시작은 비우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빌2:5-8) 예수님도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시고 주기까지 복종하셨다.
말씀의 방향 – (젖먹이는 자가 화가 있다) – 젖 먹는 자가 있고 젖 먹이는 자가 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고 말씀을 받는 자가
있다. 바울 사도는 히5:12,14에서 때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고 젖을 먹는 사람을 책망한 일이 있다.
말씀의 방향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말씀의 방향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갈1:10,
살전2:4)
받는 사람의 선호에 따라 말씀을 변질 시키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씀, 싫어하는 말씀을 구별하고 말씀을
구미에 맞게 요리하는 행위는 거짓 선지자와 유사한 모습이다. 말세에 준동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공통점이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현혹하는 것이다. 말씀은 싫은 말씀 좋은 말씀의 구분이 없다.
생명의 방향 –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 생명의 특성 중에 결정적인 것이 지속성의
문제다. 생명의 특성이 신앙 생활의 특성으로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에 그대로 적용된다. 생명의 시간적 속성이
간헐적인가 지속적인가. 끊임없는 지속 상태인가 가끔 중단이 있는 상태인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해 관계가 아니라 생명
관계이다. 이해 관계는 이해 유무에 따라 관계가 지속되기도 하고 중단되기도 한다. 생명 관계는 무조건 지속적이다.
하나님 관계는 연결과 단절의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유무의 문제다. 예배를 얼마나 많이 빠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빠지면
안되는 문제다. 전선이 얼마나 끊어졌느냐가 아니라 끊어졌느냐 아니냐가 정전 여부를 결정한다. 에배 생활,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다. 성소의 등잔 불이, 번제단의 불이 한번도 끊이지 않아야 한다. (레6:12,13.24:2)
말씀의 방향이 나의 방향이어야 한다. 말씀의 방향과 일치될 때 말씀과 동행이 되고 동행이 되면 말씀이 공급과 인도하심이 된다.
광야 생활의 출발이 십계명을 주신 후 비로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0년의 광야 생활을 성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십계명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에 의해서였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30: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