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문제의 보편성과 필연성 – 근심은 문제를 원인으로 한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다. 그 상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한 근심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속성의 있다. 문제 없는 시간이 없고 문제 없는 장소가 없고 문제 없는 사람이 없다. 지상에 문제없는
천국은 없다. 지구상에서의 시간은 천국 같은 시간은 없다. 문제 없는 사람이 없다.
근심의 두 가지 입장 – 근심은 상대성을 갖고 있다. 근심의 원인 제공자가 있고 그 원인에 의한 피해자가 있다. 다시 말해 근심을 주는
입장이 있고 근심을 받는 입장이 있다.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받는 입장이 된다. 하나님은 연단하실 때
사람을 사용하신다. 연단을 받는 것은 복이 되지만 주는 것은 결코 복이 아니다. 연단은 계획이 있다는 증거이다.
근심의 이유 – (사람 때문에) 근심이 사람으로부터 기인된 경우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인간 관계의 필연성 때문에 사람으로 인한 근심을
피할 수 없다. 이삭과 리브가는 아들 에서 때문에 근심했고 다윗은 아들 압살롬 때문에 근심과 고통을 겪었다. 사무엘은 사울로 인하여
슬퍼하고 아파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애굽에 팔았던 잘못 때문에 근심했다. 사람을 통하여 사람을 연단하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한
근심이 상존한다. 연단 주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연단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근심의 이유 – (물질 때문에) 물질 이야말로 필연적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서 매일의 문제다.
주기도문에서 조차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양식 문제가 중요시된다. 산상수훈에서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된 이슈가 생계 문제다.
하나님도 이미 생존 문제의 절대 필연성을 잘 알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물질 문제와 하나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근심의 이유 – (말씀 때문에)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여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베드로의 설교, 스데반의 설교를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 어찌할꼬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에 의한 근심 마음의 찔림이 필요하다. 그 찔림이 영적 변화의 동기가 된다.
하나님의 근심 – 하나님의 근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창6:5-7)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지으신것을 후회하셨다. 후회는 모든 것의 취소를 말한다. 창조하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리시겠다는 것이다.
부모의 근심 – 부모의 근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창26:35에서 이삭과 리브가는 아들 에서 때문에 근심한다. 다윗은 압살롬 때문에 근심하고
고통을 당한다. 자녀가 부모의 근심이 되고 고통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잠10:1, 잠17:25, 아비의 근심이 되고 어미의 고통이 되는 불행이
있다. 부모 공경은 부모에 앞서 자녀를 위한 것이다. 공경의 축복은 자녀가 받는 복이기 때문이다.
인도자의 근심 – 영적 지도자의 근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 히13:17에서 너희를 인도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의 근심과 슬픔이었다. 사무엘은 평생 그를 보지 않았다.(삼상15:35)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그의 종을 보내신다.주의 종의 인도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인도자의 기쁨이 하나님의 기쁨이다.
성령의 근심 – 성령의 근심이 되는 사람이 있다.(엡4:30) (사63:10) 하나님의 근심, 부모의 근심, 영적 지도자의 근심이 되는 사람의
마지막은 성령의 근심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근심의 결과는 히6:4-6에서 “한번 비침을 얻고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십자가의 원수로 살게 되는 무서운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근심 받는 입장과 주는 입장 – 근심을 받는 사람은 알고 있으나 근심을 주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문제다. 근심 받는 것보다 근심 주는
입장이 치명적인 불행에 있게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나의 운명은 받는 근심 때문이 아니라 주는 근심 때문에 결정된다. 고난을 받는
것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주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 대접받는 것보다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근심의 원인 – 근심의 원인이 환경(상황)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내면에 있다. 악의 뿌리가 내 안에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딤전6:10) 고통의 원인이 자기 사랑, 돈 사랑, 부모 거역(딤후3:2)이 상황이 어닌 인간 내면에 있다. 자기 사랑이 하나님 사랑을
대신하고 자기 신뢰가 하나님 신뢰를 대신하는 결과가 모든 근심과 문제의 근원이 된다.
근심의 결과 – “무엇을 먹을까” 생계를 염려하는 이유는 물질에 있지 않고 믿음의 부재에 있다. 믿음의 부재는 염려와 근심의 결과이다.
(마6:30-31)’믿음이 적은 자들아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지말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여부가 염려와
근심의 원인이며 근심의 해결은 물질의 해결에 있지 않고 믿음의 해결에 있다.
근심의 해결 –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인생의 모든 필요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하나님의 자녀(백성) 여부에 있다. 신분의 해결이 필요 해결의 전제 조건이며 인생의 근본 목적인 것이다. 필요 해결이 근심 해결이 아니라
존재 해결이 근심 해결의 핵심이다. 존재 해결(하나님 관계 해결)이 구원이며 인간의 근본 목적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