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질문, 당연한 질문 — 돈을 좋아하십니까? 물으면 ‘싫어합니다’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것이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라고 물으면 ‘싫습니다’ 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것이다. 그러면 돈을 좋아하면 돈을버는 비결에 대해 ‘자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자신있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것이다. 역시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성공하는 비결에 대해 ‘자신 있습니까?’물으면 자신있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방법과 비결이 있다.
필요 없는 질문, 필요한 질문 — 모든 사람이 성공을 추구 하는가는 필요 없는 질문이다. 성공의 목적이 무엇인가는 필요한 질문이다. 자신은 성공했으나 그 사람의 성공이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면 그 성공은 실패 했어야 할 성공이다. 인생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원하십니까’는 필요 없는 질문이다. 그 행복이 나만을 위한 것인가 모두를 위한 것인가는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다. 필요한 질문에 대한 필요한 대답이 중요하다.
가능한 요구, 불가능한 요구 – ‘항상 기뻐하라’는 요구(명령)가 있다. 이 요구가 가능한 요구인가 불가능한 요구인가 필요한 질문이다. 성경에서 지시하고 요구하는 명령을 사람들은 불가능한 요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근본적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능한 요구를 하는가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가는 필요 없는 질문이다. 그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불가능한 요구는 필요 없는 요구이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절대 가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능한 상황, 불가능한 상황 – ‘항상 기뻐하라’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당연한 이유는 상황의 조건 때문이다. 기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요구와 명령에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환난에 직면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말씀은 실천이 불가능할 것 같이 생각된다.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가능성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근거하지 않는다. 육적 차원이 아닌 영적 차원의 문제이다.
가능한 능력, 불가능한 능력 – 상황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능력에 있다. 사람의 능력에 의하여 해결하려 하는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해결하려 하는가 적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 공사를 중단하고 있던 스룹바벨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누구의 능력으로 살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누구의 능력으로 하는지를 묻지 않고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지식, 불가능한 지식 – 어리석은 질문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전능 하심을 아십니까? 필요하고 당연한 질문이 있다. 그러면 왜 문제가 해결 되지 않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능 하심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문제다. 문제는 알고 있는 것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겨룬다면 귀신만큼 알 수 있을까 알고 있는 지식으로 살기 때문에 귀신에게 번번히 당하고 사는 것이다. 귀신에게 번번히 당하는 삶을 살면서 신앙 생활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가능한 방법, 불가능한 방법 —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이 설령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지식에 불과하다. 많은 말씀을 알고 있어도 지식이다. 능력이 아니다. 지식이 사용 되어질 때 능력이 된다. 지식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방법만이 말씀이 지식에 머물지 않고 사용되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말씀이 지식에 머물면 매사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대로 하게 된다. 방법이 나의 방법이냐 하나님의 방법이냐는 말씀대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어리석은 질문이 필요한 사람, 필요 없는 사람 — 행복하기 원합니까 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행복을 원하면서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원하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기 때문에 어리석은 질문을 다시 해야할 필요가 있게 된다. 어리석은 질문이 당연한 질문이 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당연한 지식, 당연한 믿음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이 사실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며 필수적으로 믿어야 할 사실이다. 만물의 시작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출발이 되고 인간 스스로를 아는 지식의 출발이 된다. 나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질문인가 불필요한 질문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하여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이 내 인생의 결론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