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4:4-7)
기쁨의 서신 – 빌립보서는 일명 기쁨의 서신이다. 서신의 주인공 바울은 옥중에 갇힌 몸이었다. 위로한다면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이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을 위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빌립보서는 옥중에 있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기뻐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 그 자신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 기뻐하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귀한 힌트가 있다. 기쁨은 조건이나 환경에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기쁨의 지속성 – 기쁨이 기쁨이 되는 중요한 특징은 지속성에 있다. 지속성에 의하여 일종의 기쁨의 수명이 결정된다. 수명이 짧은 기쁨과 수명이 긴 기쁨이 있다. 빌립보서의 기쁨은 수명이 짧은 일시적인 기쁨이 아닌 지속적인 기쁨, 영구적인 기쁨을 말한다. Sometrime의 기쁨 아닌 all the time기쁨을 말한다. 기쁨은 치료제 약품처럼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다. 필요 수단이 아니라 존재 상태를 말한다. 수단은 필요 기회에 제한되기 때문에 지속성에 한계가 있으나 존재는 기회를 초월하여 지속적이다.
기쁨의 기준 – 기쁨의 기준에 세상 사람의 기준이 있고 하나님의 기준이 있다. 세상적 기준은 육신적인 것으로 쾌락적이며 향락적이며 지극히 찰나적이며 감정적인 것으로 영혼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영혼의 파괴의 치명성은 하나님 관계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영적인 것으로 영을 살리며 영을 강건케 하며 하나님의 관계를 형통케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영적 관계의 문제이다.
기쁨과 영적 정체성의 관계 – 기쁨이 성령의 역사와 악한 영의 역사의 근본적 차이를 보여주는 특징이 된다. 성령의 열매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육체의 열매는 ‘음란,더러움,호색,우상 숭배,술수,원수 맺는것,분쟁,시기, 분냄,당짓는 것,분리함,이단,투기,술취함,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 기쁨 또는 그 반대 현상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적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악한 영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인 것을 알아야 한다.
기쁨의 상실의 원인 – (영적인 이유)‘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으니라’ 성령의 인치심의 확실함의 여부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기쁨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떠나서 영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육신적 질병보다 어려운것이 정신 질환이다. 정신질환은 물리적 방법, 의료적 방법이 소용없고 오직 영적 방법으로 가능하다. 예수님 공생애 동안 많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신 이유가 예수님만이 영적 치유가 가능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기쁨의 상실의 원인 – (염려)염려의 원인은 문제 해결을 하나님이 아닌 내가 하려고 하는데서 기인한다. 해결자가 나 자신인가 하나님인가에 따라 염려 해결은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해결자가 누구냐는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다. 해결은 주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이면 당연히 나에게 책임이 있고 내가 해결해야 한다. 자칫 문제의 원인이 상황과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근본적으로 존재문제이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염려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기쁨의 상실의 원인 – (언어)순간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기쁨의 문제에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 영향을 준다. 순간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운명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원망 대로 멸망케 하셨다. 마귀는 말의 권세, 말의 원리를 잘 안다. 이것을 역이용하여 인생을 멸망시킨다. 보이는 물리적 환경과 상황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말이 운명을 결정한다. 말의 표현을 잘해야 한다.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쉽게 고칠 수 없는 인생을 만든다.
기쁨의 상실의 원인 – (언어)언어는 단순히 감정을 상하게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영혼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기적의 양식으로 살았다. 과거에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기적의 양식인 만나를 먹었다.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했다. 섞여사는 무리들의 불평과 원망을 듣고 부화뇌동하여 같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게 들린대로 시행하리라 하셨고 그 말씀대로 그들은 광야에서 다죽었다.
기쁨과 상황의 관계 – 기쁨과 상황의 관계가 있다. 기쁨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상황이 증명해준다. 상황에 의하여 기뻐하는 기쁨과 상황에 관계없이 기뻐하는 기쁨이 있다. ‘항상 기뻐하라’는 상황에 관계없이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도 상황에 관계없이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상황에 종속된 기쁨과 감사가 아니라 상황을 주도하는 기쁨과 감사를 말하는 것이다. 빌립보 옥중에서의 바울을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기쁨의 전염성 – 기쁨도 근심도 전염성을 갖고 있다. 광야에서 섞여사는 이방인 족속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하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되어 통곡하며 원망하기 시작했다. 소수에서 시작된 부정적 현상이 모든 백성에게 확산되어 결국 모두가 멸망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기쁨도 근심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한다. 병균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도 전염된다. 치명성은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더 치명적이다. 병균은 육신의 생명에 영향을 주지만 영적인 것은 영적인 생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