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38-44)
현장(무덤)에 오신 예수님 – 무덤에 오신 것은 인간의 삶의 현장에 오신 예수님을 말한다. 인생의 현장에 오신 이유는 인생의 문제 해결을 위해 오신 것이다. 인생 문제의 최종적 문제는 죽음이다. 죄인인 인생은 죄로 인한 저주로 문제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 삶을 살게 되고 저주의 종말은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나사로 무덤에 오신 이유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오신 것이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이다.
돌로 막았거늘 – 무덤은 입구가 돌로 막혀 있었다. 돌로 막는 이유는 안에 시신이 있다는 뜻이다. 무덤을 기준으로 하면 세상 사람은 무덤 안에 있는 사람과 무덤 밖에 있는 사람으로 나뉘고 무덤에 들어간 사람과 무덤에 들어갈 사람으로 나뉜다. 무덤 밖은 생명,축복, 행복의 삶이며 무덤 안은 죽음,저주,불행의 삶이다. 불신의 돌, 불순종의 돌,불평의 돌이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행불행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돌을 옮겨 놓으라 –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지시하셨을 때 마르다의 대답은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였다. 예수님이 시체를 살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돌을 옮기라고 하신 것이다. 불가능한 시신 살리는 문제가 아닌 가능한 돌 옮기는 문제를 지시한 것이다. 여기서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역할 구분의 문제가 나온다. 하나님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돌 옮기는 문제는 마르다의 할 일이다.
죽은지 나흘되어 냄새가 나나이다 – 죽은 자의 상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나의 판단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돌을 옮기는 행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내 생각에 불가능 하기 때문에 순종이 불가능하고 기도가 불가능하고 믿음의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이 불가능하면 행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행동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 속의 고정관념이 말씀을 막는 역할을 한다. 말씀이 막히면 하나님의 영과 생명이 막히는 것이다.
상황의 불가능, 생각의 불가능 – 나사로는 생명이 없어 몸이 땅 속 무덤에 있고 마르다는 생각에 막혀 말씀이 없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몸이 무덤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몸 안의 마음이 죽은 상태(말씀 없는)에 있기 때문에 그 몸이 무덤인 것이다. 몸이 무덤인 사람이 있고 땅 속이 무덤인 사람이 있다. 문제는 상황이 막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막힌 것이 문제다. 상황이 불가능한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 속의 불가능이 문제인 것이다.
믿음의 유일성 – 나사로의 죽음의 문제는 모든 조건이 훌륭해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없고 모든 조건이 열악하여 불가능해도 단 하나 믿음만 있으면 가능하다. 마르다의 돌을 옮기는 행동이 나사로를 살리는 능력이 되고 핵심적 수단이 아니다. 돌을 옮기는 행위는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며 순종의 실재이다. 믿음이 행동으로 표현되고 그 행동은 순종을 말하며 순종은 결과적으로 말씀을 문제가 있는 현장에 운반하는 것이다. 순종 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현장으로 전달된 말씀이 역사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 역할 – 나사로 사건에서 마르다의 할 일과 예수님의 할 일이 있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문제 해결을 하려고 여러가지 방법과 수단을 강구한다.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면 굳이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을 해결하는 것이다. 먼저 나의 믿음을 해결하면 그 믿음을 확인하시고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신다. 언제나 이 순서는 변함이 없다.
믿음과 행동, 말씀과 능력 – 먼저 요구되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재이며 믿음을 증명하는 행동은 보이는 실재이다. 보이지 않지만 믿음은 반드시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이 행동으로 증명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 가운데서 능력이 보이는 역사로 나타난다. 영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실체이며 육적인 것은 보이는 실체이다. 영적인 것이 존재하면 반드시 육적인 수단으로 나타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생각이 보이는 몸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의 내적 역사와 외적 역사 –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이 먼저 마르다에게 지시하시는 말씀이 있다. 말씀의 내용이 어떤 내용이냐는 관계없다. 일차적으로 말씀이 내 안에서 나의 믿음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내 안에서 말씀이 역사하여 그 말씀이 나의 행동으로 나타나면 그 말씀이 현장에서 역사하기 시작한다. 말씀이 나에게 주어지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고 살아있는 그 말씀이 나를 통하여 상황에 구현되게 된다. 말씀 자체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현장으로 가져가는 행위가 필요하다.
생각의 돌과 상황의 돌 – 말씀이 주어질 때 내 안에 있는 굳은 생각이 말씀을 방해하는 것이 근본적 문제이다. 생각 속에 있는 굳은 생각을 제거하여 말씀이 말씀 그대로 들어와야 한다. 말씀이 액면 그대로 내 안에서 역사하면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믿음의 나타난다. 믿음으로 말씀이 상황에 나타나면 상황의 문제는 어떤 형태 어떤 규모의 문제라 해도 지체없이 해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