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2)
악인 – 악인의 정의는 윤리적 인본적 기준에 의한 구분이 아니다. 인간적 기준에 의한 선함과 악함은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 문제가되지 않는다. 결정적인 것은 영적 기준에 의한 “악”이다. 성경이 말하는 악은 영적인 죄를 말한다. 인간적인 죄는 치명적일 수는 있지만 영적 멸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죄는 육신적인 피해를 넘어 영적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육신적인 죄보다 영적인 죄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된다.
영적인 죄와 육신적인 죄 – 죄는 본질적 죄와 비본질적 죄가 있다. 구원과 멸망의 기준이 죄는 본질적인 죄, 원죄이다. 회개의 범위는 비본질적인 죄인 자범죄를 포함하지만 구원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죄는 원죄이다. 자범죄는 표면적인 죄라고 하면 원죄는 내면적인 죄이다. 원죄는 원인적인 죄라고 하면 자범죄는 결과적인 죄이다. 문제의 분별에 있어서도 보이는 물리적 육신적인 문제는 비본질적인 문제다. 보이지 않는 영적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다.
악인의 꾀(거짓말) – “꾀”는 plan, advice, strategy의 뜻을 가지고 있다. 악한 영은 인간을 향하여 전략적으로 계획적으로 접근한다. 하나님의 의도에 대하여 의심을 유도하고 오해를 유도한다. 일관된 방법은 거짓말이다. 마귀의 본질이 거짓이다.(요8:44) 거짓이 탄로나고 밝혀져도 절대 시인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마귀의 거짓말을 100%라고 믿지 않고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진실일거라고 생각한다. 이 상식이 마귀적 상식의 덫이다. 마귀는 이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악인의 꾀(명령과 의견) – 뱀과 하와의 대화를 하는 동안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이 명령에서 의견으로 바뀐다. 토론하다 보면 말씀의 성격이 명령이 아니라 의견으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의견으로 바뀌는 순간 하나님의 의견과 나의 의견의 대등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명령의 절대성이 제거되고 선택의 대상이 되면서 두 가지 의견 중에 취사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는 마귀가 노린 것이다. 마귀가 명령을 의견으로 성격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악인의 꾀(이해관계와 생명관계) – 마귀는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하게 하여 관계에 변화를 유도한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거짓말로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시키므로 생명 관계에서 이해 관계로 인식을 바뀌게 만든다. 하나님 관계를 생명적 존재적 관계에서 상황적 조건적 관계로 오해하게 만든다.
뱀(마귀)의 전략 – (회의,의아)뱀은 선악과에 대하여 하나님께 직접 들은 아담에게 접근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들은 하와에게 접근했다. 마귀는 하와에게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질문한다. 질문이 암시적으로 의문을 갖게 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참으로 — 진짜 그럤냐?는 반문은 의문을 품게 하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할 줄을 아시기 때문이라는 말은 선악과 금지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뱀(마귀)의 전략 – (혼란 Mixed Feeling)마귀의 말에 하와의 마음이 복잡해진다. 복잡한 상태는 분별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마음이 두 마음으로 나뉘어 반신반의 상태가 된다. 반신반의는 믿는 쪽으로의 방향이 아니라 불신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로다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약1:8) 반신반의는 불신이다. 오해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오해가 진행되는 상태인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하고 마귀의 말을 신뢰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선악과 사건의 결정적 의미 – (분별 기준) 많은 나무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이 유독 선악과 하나를 금지하신 이유는 생명을 지키게 하기 위한기준의 표시다.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의 기준을 세워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하는 마귀의 존재와 전략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삼게 하신 것이다. 선악과의 가치와 귀중함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대적자를 분별하고 그들의 악한 계교를 분별하는 기준으로 세워 놓으신 것이다. 하와는 선악과를 통하여 마귀의 정체를 분별 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뱀(마귀)의 기준으로 바뀐 결과 – (기준의 변질)뱀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된 후의 결과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이 합법이 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도 불법이 아니다. 합법적인 내 기준을 신뢰하는 것뿐이다. 불순종도 불순종이 아니라 의견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번째 위치에 놓는 것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있기 때문에 내 기준에 의해서 편의상 순서가 바뀐 것뿐이지 내 기준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씀 대로의 삶과 생각 대로의 삶 – 말씀에 의한 삶과 생각의 의한 삶 중에 어느 것이 현실적인 삶이며 어느 것이 비현실적인 삶인가 상식적으로 내 생각대로의 삶이 지극히 현실적인 삶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 생각대로의 삶이 내 생각대로 다되었는가 모든문제가 생각대로 다 해결 되었는가 전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씀대로의 삶은 말씀 그대로 되는 것이 확인되는 삶이다.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만물이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을 믿음으로 알 수 있다.(히11:3)
예수가 길이고 답이다 – 예수가 길이며 답인 것은 천국 간 후에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확인되고 확인해야만 한다. 여기서 확인되는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다. 죽은 후에 확인되는 사람은 천국과 무관한 사람이다. 천국 뿐 아니라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얼마든지 확인된다. 예수가 길이며 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