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24-31)
염려하는 새(꽃)를 본적이 있는가—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는 새는 굶어 죽는 새가 없다. 그러나 염려하는 사람은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기아로 죽는 사람이 년간 9백만명에 이른다. 그리고 만성 식량부족으로 고통 당하는 인구가 23억명에 달한다. 무엇을 먹을까를 기준으로 하면 새와 사람이 차이가 없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먹느냐를 기준으로 하면 새와 사람이 다르다. 새는 목적이 먹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목적 때문에 먹는다.
보물이 있는 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다 – 물질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목적지를 묻는다. (마6:19-21)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마음이 하늘에 있고 땅에 쌓는 사람은 마음이 땅에 있는 것이다. 물질 문제는 마음의 방향과 목적지를 분명히 알게 한다. 하늘을 향한 삶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삶이 되고 땅에 쌓는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는 무너지고 부패하고 도적질 당하는 삶이 된다.
믿음의 대상 (재물이 주인인가 하나님이 주인인가) – 마음의 방향을 물은 예수님은 주인에 대하여 묻는다. 구원의 여부는 주인이 누구냐를 보면 알 수 있다. 롬10:9-10에서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구원은 누가 주인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아닌 재물이 주인인 사람은 구원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해결 순서 – 25절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생에게 음식보다 목숨이 중요하지 않느냐 의복보다 몸이 중요하지 않느냐는 중요성의 우선순위 해결의 우선순위를 말씀하신다. 목숨 해결과 물질 해결 가운데 어느 해결이 먼저이며 중요한가? 먹을 것이 있는가와 먹을 수 있는가 중에 어느 것이 우선적인 문제이며 본질적인 문제인가 먹을 것이 있어도 먹을 수가 없으면 먹을 것이 무의미하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우선적이며 본질적 문제다.
존재와 가치 — 26절에서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신다. 새(꽃)와 사람을 비교하면서 누가 귀한 존재냐를 물으신다. 새와 사람의 차이는 가치에 있다. 새는 가치를 모르나 사람은 가치를 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중요한 가치의 차이는 영적 가치와 육적 가치에 있다. 구원 전에는 영적 가치보다 육적 가치를 월등하게 보았지만 구원 후에는 육적 가치보다 영적 가치를 월등하게 본다. 목숨 가치와 물질 가치에 있어서도 구원 전과 구원 후가 다르다.
사람의 목숨과 새(짐승)의 목숨 – 사람의 목숨과 짐승의 목숨의 차이는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하다. 차원을 달리하는 차이가 있다. 영적 생명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사람의 목숨은 영생의 기회가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육적 목숨이 있어야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 육적 목숨이 없으면 영적 생명을 받을 수가 없다. 육적 목숨이 있는 동안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적 생명에서 짐승의 목숨과 사람의 목숨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새(꽃)의 생계 해결과 하나님의 자녀의 생계 해결 – 비인격적 피조물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면서 인격적 피조물인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양식 공급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신다. 새와 꽃의 생계를 책임지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의 양식을 어찌 책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신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신뢰가 생명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증거 – 믿음은 구원의 절대 조건이다. 동시에 믿음은 종류가 없다. 구원받는 믿음과 현실에서의 모든 문제에 대한 믿음은 같은 믿음이다. 믿음은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구원부터 시작해서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믿음이 적용된다. 모든 상황에서 믿음은 한결같이 같은 믿음이다. 믿음은 영원히 동일한 이유가 그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비롯한 인생 전반을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현세 해결의 믿음, 내세(영생) 해결의 믿음 – 시간적으로 믿음이 유효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육신적 문제 해결을 위하여 요구되는 믿음과 내세 구원을 위하여 요구되는 믿음이 같다. 중요한 것은 내세 구원을 믿는 믿음이 현실에서 당면한 다양한 문제 해결에 대하여도 요구되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현재 입증되어야 내세에 요구되는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안보이는 내세는 믿는다면 당연히 현실에서도 믿어야 한다.
안보이는 내세는 믿고 보이는 현실은 못 믿는 믿음 – 막연한 종교 생활하는 사람의 믿음의 특징은 안보이는 내세는 믿는다고 하면서 보이는 현실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믿지 못한다. 이 사람의 구원은 헛된 구원이다. 현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믿음으로 내세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완전한 자기 착각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하면 내세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