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전쟁과 인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신앙생활 역시 전쟁이다.영적 전쟁이라고 하면 악한 영과의 싸움을 연상 하지만 하나님과 싸운 사람이 있다.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야곱이다. 사람들은 그날 밤 야곱이 생명을 걸고 기도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경은 정확히 씨름 했다고 말한다.”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32:24) 이건 기도가 아니다.이유는 두 가지다. 

기도는 내 소원을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다.얍복 나루터의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씨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바크”다. 이 말은 ‘대등한 관계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서로 겨루다’라는 뜻이다. 야곱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백번 양보하여 이 씨름을 기도라고 한다 할지라도 의문이 있다. 그것은 씨름을 거는 주체 때문이다. 씨름을 거는 주체가 누구인가? 누가 주도적인가? 야곱인가, 하나님인가? 기도는 내가 소원이 있어 내가 하나님 앞에 주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장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주도적이시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씨름이다. 그날 밤, 야곱은 홀로 남아 에서로 인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 현장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때 야곱은 싸움을 거는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을 것이다. 에서가 보낸 사람이거나, 아니면 라반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어떤 사람’이었다(창32:24) 그가 싸움을 걸어오니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죽지 않으려고 싸웠을 뿐이다. 

느닷없이 나타나 덤벼드는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얍복강변의 모래판에서 밤새도록 씨름이 계속됐다. 밤새도록 뒹구는 과정에서 그는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된다. 자신이 붙잡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이다. 기절할 일이었다. 승부를 따진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결과가 나왔다. 누가 이겼는가? 야곱이 이겼다. 버러지같은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사41:14) 할렐루야! 사람이 하나님을 이겼다. 

그런데 정말 야곱이 이긴 것인가? 아들과 뒹굴면서 장난 삼아 씨름을 해본 적이 있는가? 세 살짜리, 다섯 살짜리 아들과 씨름해서 백전백승한 아빠가 있는가? 아빠가 진 것이 아니라 져준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해석도 있다. 하나님이 일부러 져 주셨다면 환도뼈 까지 부러뜨려 자기 몸 하나 간수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뼈가 부러진 야곱은 하나님을 포기하기는 커녕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하나님이 사정할 정도로 붙들고 늘어졌다. 

빈손이었던 야곱이 악전고투 끝에 부자가 되었으나 다시 빈손으로 망연자실하고 있는 자기를 강 건너에서 에서가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집을 떠나 홀로 빈 들판에 누웠을 때 만난 하나님을 다시 빈손이 된 지금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만나야 하는 분은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하나님 한 분 뿐이다. 환도뼈가 부러지기 전에는 빈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서가 칼을 갈고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허리까지 부러졌다. 

도저히 길이 없고 방법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인간의 선택지는 하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가항력적으로 하나님께 전부를 걸 수 밖에 없게 된다. 인간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을 끝에 와서야 알게 되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자신의 몸까지 사용불가능이 된 상태에 와서야 하나님만을 붙들 수 밖에 없고 놓칠 수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완전히 망한 야곱을 향하여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하신다. 

철저히 처절하게 부서지고 패배한 야곱이 이겼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에덴에서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은 하나님이 되었다. 인간 자신이 선악의 기준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 인간의 선악의 기준이 되는, 기준이 바뀐 사건이 선악과 사건이고 하나님이 바뀐 사건이다. 하나님을 통하여 축복 받는 것을 알고 축복을 받았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선악의 기준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를 않는다. 

하나님이었던 야곱이 완전히 무너진 후 완전히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힘이시고 나의 전부이신 상태가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노릇을 했던 자기를 이긴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것이 결정적 인간의 죄의 뿌리이며 멸망의 원인인 것이다.(롬10: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저주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인 나를 이겨야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