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의 위선을 지적하시면서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 현세적인 것과 내세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생 양면의 균형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과 육의 전인적 구원이며 영생은 현세 구원과 내세 구원을 포괄하고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 전인적 구원이다.
잔과 대접의 겉과 속 – 식사 초대 자리에서 손 씻는 규례를 지키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바리새인에게 식사에 사용되는 그릇을 비유하여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다. 바리새인의 삶은 그릇의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속까지 깨끗해야 사용이 가능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릇의 사용 적합도는 겉 모양에 있지 않고 속의 청결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릇의 제작은 겉만이 아니라 속까지 포함되어야 완전한 것이다.
그릇의 본질 – 겉 모양에 있지 않고 속의 상태에 있다. 겉이 육신이라고 하면 속은 영혼이다. 그릇 용도의 겉은 비본질이요 속은 본질이다. 육신은 비본질이며 영혼이 본질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과 촛점은 영혼에 있다. 육신 문제 해결을 본질적 문제로 영혼 문제를 비본질적 문제로 오해하면 구원을 놓치게 된다. 인생의 핵심 문제는 육신의 문제가 아니다. 영혼의 문제다. 인생 문제 해결의 본질은 영혼 문제 해결에 있다.
구원의 문제와 생계 문제 – 인생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은 인생의 생계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셨다. 특히 마 6장은 의식주 문제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혀 주셨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냐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지 아니하냐, 목숨을 위해 사느냐 무엇을 먹을까를 위해 사느냐 몸을 위해 사느냐 의복을 의해 사느냐 삶의 본질적 목적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과 하나님 자녀의 차이 – 이방인은 목숨보다 먹을 것을 위해 살고 하나님보다 먹을 것이 더 중요하다. 먹을 것을 위해 목숨을 사용하고 있고 입을 것을 위해 몸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먹을 것보다 목숨을 위해 살고 입을 것보다 몸을 위해 산다. 하나님의 자녀의 모순이 있다. 천국 문제 해결을 믿는다면 생계 해결도 믿어야 한다. 만일 생계문제를 염려 한다면 구원을 믿는 것이 맞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인생의 본질 – 이방인의 인생의 본질적 문제는 육신 문제이다. 만일 믿는다고 하면서 육신 문제가 본질적 문제라고 하면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방인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혼이 본질적 문제이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구원의 확실한 증거는 본질에 있다. 영혼이 본질적 문제인가 육신이 본질적 문제인가 여기에서 분명해진다.
육신을 위해 영혼이 존재하는가 영혼을 위해 육신이 존재하는가 – 비본질과 본질의 우선순위와 목적의 문제다. 고후4:7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 그릇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담겨지게 된 것이다. 우리 인생은 영생의 그릇, 구원의 그릇인 것이다. 육신의 존재 목적이 엄청난 축복(영생)의 그릇됨에 있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물질 문제인가 영적 문제인가 – 물질적 십일조에는 철저하나 영적인 하나님 관계는 그 반대 상태에 있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책망하셨다. 십일조와 하나님의 명령과 축복의 약속이 말3장에 나와 있다. 축복의 약속에 앞서 근본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돌아오라는 메시지에 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이스라엘은 주인에게로 돌아와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의 핵심 의미이다.
이것이 전부냐 일부냐 – 행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약속했던 헌금 금액를 속였을 때 ‘이것이 전부냐?’는 질문에 ‘전부다’라는 거짓 답변 때문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사건이 있었다. 이것이 전부냐? 결정적인 질문이다. 나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전부인가 일부인가 사력을 다한 수고라 해도 1/2를 곱하면 절반뿐이다. 이런 어리석움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일부인가 전부인가 – 구원은 부분적인 구원은 없다. 당연히 전인적인 것이다. 천국을 가도 나의 전부가 가고 지옥을 가도 나의 전부가 간다. 예수를 부분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전부를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시간도 특정 시간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믿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