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5:17)

제6계명(살인하지 말라)의 특징 –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 중에서 가장 지키기 쉬운 계명일 수도 있다. 살인은 보통 사람이 생각조차 하기 힘든 범죄이기 때문이다. 범하기 가장 어려운 계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계명이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있어서 생존 수단보다 생명 자체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생명의 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고 포기가 불가능하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생명의 문제는 타협이 포기가 절대 불가능하다. 

최초의 살인자 – 성경에는 최초의 살인자가 나온다. 요8:44에서 “너희는 너희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최초의 살인자가 마귀인 것은 선악과 사건의 원인 제공이 마귀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먹게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하와를 속였다. 

하나님께 속한 자 마귀에게 속한 자 – 마귀가 살인자가 된 것은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마귀에게 속하여 진리가 그 안에 없으므로 예수를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진리는 생명이요 비진리는 사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마귀는 생명을 파괴하는 존재이다.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의 말씀(진리)을 버린 인생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는 죄를 범하게 되어 스스로를 살인한 사람이 되었다. 

누구의 말이 나를 위한 것인가 –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으나 마귀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통상적으로 누구의 말이 나를 위한 말인 것 같은가 인간적 입장에서 보면 얼핏 마귀의 말이 나를 위한 말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위한 말 같고 마귀의 말은 나를 위한 것 같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할 줄을 아심이라”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를 의심케 만들었다. 

인격적 살인, 물리적 살인 – 마5:21-22에서 예수님은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를 재정의하신다. 형제를 향하여 노하는 것 라가라 욕하는것 미련한 놈이라 욕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살인은 인격적 살인, 물리적 살인, 영적 살인이 있다. 인격적 살인은 동기적(원인적) 살인이며 물리적 살인은 결과적 살인이다. 비본질적 살인이 있고 본질적 살인이 있다. 육신적 살인은 비본질적 살인이며 영혼의 살인은 본질적 살인이다. 

악한 자를 악하게 대적하지 말라 –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하신 이유가 있다. 검은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치는 도구이다. 남을 향한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분노로 내가 망한다. 남을 향한 비판과 정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비판과 정죄를 인하여 내가 비판과 정죄를 받게 된다. 남에 대한 미움이 결국 나를 망하게 한다.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이 결국 나를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망하게 한다. 

최초의 살인의 원인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자세에 있었다. –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불신했던 그 불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명을 훼손했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도 하나님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을 훼손했다. 자기의가 하나님의 의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을 훼손했다. 자기 교만도 하나님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을 훼손하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행동도 하나님을 훼손하지 못한다. 단지 자신을 훼손할 뿐이다. 

너희 속에 내 말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 요8:37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너희 속에 내 말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라고 하셨다.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예수)이 계시다는 것이며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말씀이 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며  말씀이 없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존재는 살리는 일을 할 수 없다. 죽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종교 생활과 신앙 생활 –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철저한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종교적 기준과 원칙에 철저한 결과는 철저히 예수를 배격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종교적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기준으로서 구원과는 관계없는 종교적 기준일 뿐이다. 정상적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종교적 원칙에 투철한 그들은 사람 앞에서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교만했다. 예수님을 종교 재판에 의하여 하나님을 방해하고 모욕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십자가에 처형한 것이다.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 생활을 한다는 사람 가운데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 생활과 신앙 생활을 구분하지 못하면 구원받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순종하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삶을 살게 된다.

살리는 삶과 죽이는 삶 – 영이 죽은 사람은 죽은 삶을 살고 영이 산 사람은 살아있는 삶을 산다. 살아있는 사람이 남을 살릴 수 있다. 죽어 있는 사람은 남을 살릴 수 없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기본적으로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생명이 있을 때 모든 것이 살아있고 생명이 없으면 모든 것이 죽어있는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가 죽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