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36:1-16)
두가지 기적 – 두가지 기적은 좋은 기적과 나쁜 기적,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과 사람이 행한 기적이 있다. 시편136편은 천지 창조부터 시작하여 현재 살아있는 존재 각각에 이르기까지 베푸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행하시는 유일신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서이다.
유일하신 하나님 –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영원히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유일하신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이시며 구원의 주가 되시는 것이다. 만물의 공통된 운명의 특징이 있다. 창조주의 은혜에 관련하여 만물은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존재하며 필연적으로 그 은혜를 벗어날 수 없고 그 은혜로 인하여 생존한다는 것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신은 하나님 한 분이다.
은혜의 두가지 속성(계획성, 절대성) – 민물과 인생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이며 계획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의 결정을 피할 수 없다. 은혜는 철저히 계획적이며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은혜의 특성은 100% 하나님의 행하심이며 피조물은 한 일이 ZERO 퍼센트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하신대로 말씀에 의해서 진행된다.
부정과 부인의 가능성 –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있고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으며 없앨 수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없어지지 않으며 없앨 수도 있다.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있지만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 사실은 없어지지도 없앨 수도 없다. 하늘과 땅이 무너져도 말씀은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을 부인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정과 부인의 불가능성 –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부정하고 부인할 수 있지만 창조하신 하늘과 땅, 동물과 식물, 하늘에 있는 수많은 천체와 해 달 별, 인간 자신의 존재와 호흡과 심장 박동과 출생과 사망을 부인하고 부정할 수 있는가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을 부인 할 수 있는가 이 현실이 인간의 능력과 노력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존재한다. 천지 창조에서 마지막 종말에 이르기 까지 말씀대로 진행된다.
광야의 은혜의 기적성 – 천지 창조는 물론 광야 40년만 봐도 매일이 기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는 기적이 없이는 절대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가는 광야는 기적의 은혜로 살아가는 놀라운 기적의 삶이다. 기적이 기본적인 삶의 방법이었다.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시키는데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실제로 완전히 불가능한 환경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창조를 보여준다.
현실의 은혜의 기적성 – 광야라는 특수 상황에서 만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는 어떤가 <누군가는 이렇게 기도한다. 걸을 수만 있으면 더 큰 복이 없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기도한다. 일어날 수만 있으면, 들을 수만 있으면 말 할 수만 있으면 살수만 있으면 더 큰 복이 없겠습니다.>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기적이 나에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광야 뿐인가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도 기적은 하나님에 의해서이다.
기적에 대한 반응(감사의 반응) – 광야의 기적의 예를 보아도 은혜는 100%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의 기여는 ZERO 퍼센트이다. 광야의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ZERO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 은혜 받은 사람은 그에게 역사하는 영이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이다. 감사와 원망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다. 부정적인 영, 불순종의 영에게 지배 당하고 있는 사람은 불가항력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기적에 대한 반응(원망의 반응) – 당연히 감사하여야 하는 광야의 기적 가운데서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원망하는 것이다. 날마다 기적으로 살면서 원망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런데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애굽에서 함께 나온 섞여 사는 무리(잡족)가 일이 있을 때마다 원망하는 것이다. 그 영향을 이스라엘 백성이 받는 것이었다.
감사의 결과 – 딤전4:4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감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인자 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중단이 없고 변함이 없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 은혜는 여전하신 것이다. 감사는 근본적으로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감사의 근원이다.
원망의 결과 – 민14:28에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원망하는 악한 자의 전부는 결단코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거부, 부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은혜와 생명 축복을 거절하는 행위가 된다. Negative는 Reject이며 Void다. 하나님이 Void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Void되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수단으로 하나님을 부정해도 하나님의 존재는 불멸이다. 천지가 사라져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는 변함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