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봄부터 여름내내 땀 흘리며 수고한 대가를 거두는 기회이다. 한 해의 고생이 기쁨으로 거두어지는 보람찬 계절이다. 농부의 파종과 추수는 설령 본의 아니게 실수해서 실패해도 내년이 또 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농사는 단 한번 뿐이다.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번 밖에 기회를 주시지 않았다. 인생은 하나님이 심고 거두시는 파종과 추수의 씨앗이다.
심겨질 때는 씨가 되고 거두어질 때는 열매가 된다. 씨가 뿌려지는 밭에 같은 비가 내리고 같은 햇빛이 비추어진다. 땅의 토질도 같다.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 뿌려진 수많은 씨들이 때를 따라 싹이 나고 자라서 가을이 오면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영글어 추수 때가 되면 농부는 추수를 한다. 추수 과정에서 마지막 과정이 쭉정이와 알곡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마태3장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마지막 과정이 추수의 끝을 말하고 시대적 종말의 끝을 말한다. 알곡으로 분리된 성도들은 천국 곡간에 들어가고 쭉정이로 분리된 성도들은 지옥 불속에 던져진다.
결국 쭉정이는 구원 받지 못하여 생명이 없는 성도, 알곡은 구원받아 생명이 있는 성도이다. 구원받은 증거 또는 구원받지 못한 증거는 무엇인가 생명의 여부 다시 말해 예수의 영의 내주 여부에 있다. 예수의 영이 내주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당연히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화평과 오래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인간은 예외없이 모두 죄인으로서 저주 가운데 살다가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이미 절망적인 쭉정이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알곡이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쭉정이다. 예수의 생명을 받아 알곡이 된 사람과 예수의 생명을 못받아 생명없는 쭉정이 그대로 있는 사람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알곡으로 사는 사람 쭉정이로 사는 사람이 있다. 상황이나 환경이 알곡 쭉정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씨 자체가 생명 있는 씨인가 생명 없는 씨인가 씨 자체의 생명 유무가 관건이다. 같은 환경에서 생명 있는 씨는 싹이나고 자라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 반대로 생명 없는 씨는 싹이 나지않고 자라지도 않고 열매도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길이 없고 양식이 없고 집이 없는 같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주어지는 만나와 반석의 생수가 아니면 생존이 불가능했던 은혜와 기적의 삶을 살면서 한결같이 원망한 무리가 있었고 감사했던 무리가 있었다. 본질적으로 알곡이냐 쭉정이냐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추수 하는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일을 대충 할 수가 없다.
추수 과정은 알곡과 쭉정이를 철저히 구분하는 작업이다. 잘못해서 쭉정이가 알곡으로 분류되고 알곡이 쭉정이로 분류되어서는 안된다. 한 영혼이 하나님의 실수로 잘못 분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단 하나의 알곡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그 한 영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환경과 상황을 불문하고 씨는 씨의 생명적 상태에 따라 증상과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생명 있는 씨는 생명 있는 증상이 나타나고 생명 없는 씨는 생명 없는 증상이 나타난다. 구원받아 생명 있는 삶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 9가지 성령의 열매를 한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하면 “감사”이다. 감사 속에 이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다니엘은 기도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고 기도를 강행했다. 숨어서 하는 기도, 표출되지 않는 방법의 기도가 아니라 날마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2층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기도하며 기도의 마무리는 감사 기도였다. 사자굴에 처형되는 것을 알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했다.
감사에 관련된 성경 구절 가운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가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수신자인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심각한 핍박과 환난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을 위로하기 앞서 그 환난을 감사하라는 것이다. 환난의 의미 때문이 아니라 상황을 초월하여 감사하라는 갓이다. 구원이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감사도 그렇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영생을 주신 것이다. 영생은 상황과 환경적 조건과 전혀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감사일 수밖에 없다. 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은 주신 영생이 확실하다는 의미이다, 그 확실함은 필연적으로 감사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처절한 상황 속에서 최초의 추수감사 예배를 드린 청교도들의 신앙이 바로 이러한 신앙에서 비롯된 감사였다. 알곡은 상황을 초월한 생명의 씨앗인데 반해 쭉정이는 아무리 좋은 상황에서도 싹이 날 수 없고 열매도 기대할 수 없는 껍질 모양만 가진 씨앗이다. 시간이 지나면 싹이 나는 씨앗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리는 씨앗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