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예제 반대운동 모임의 공식 메달(1795)에는 손목과 발목에 족쇄와 쇠사슬을 찬 흑인 아래쪽에 “나는 인간도 형제도 아닌가요?(Am I not a man and a brother?)”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노예는 사람인가, 재산인가?”
독립전쟁을 할 때 미국인들은 그 질문을 애써 피했다. 그러나 헌법을 만들 때는 그럴 수 없었다. 노예가 사람이라면, 하원 구성에서 북부가 불리하다. 재산이라면, 남부 노예 주인들이 세금 폭탄을 맞는다. 논란 끝에 노예는 3/5만 사람으로 보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헌법에 “기타 사람(all other persons) 3/5”이라는 이상한 문구가 실렸다.
당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들이 가장 많이 실어 나른 상품은 노예였다.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21세에 돈으로 하원의원직을 산, 전형적인 금수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찬송가를 듣고 회개했다. 술과 여자에 전 방탕한 생활을 접고, 일생을 노예해방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가 의회에서 아무리 노예해방을 외쳐도 반응이 없었다. 노예가 없으면, 영국 경제가 멈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1806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영국 경제가 휘청거렸다. 역발상이 필요했다. 일단 노예무역을 금지한 뒤 노예 밀수 단속을 명분으로 영국 해군이 대서양을 오가는 모든 상선을 수색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륙봉쇄령은 무력화된다. 피트 총리가 윌버포스의 제안에 무릎을 치면서 노예무역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기존의 노예를 놔두고 노예무역만 금지하는 것은 위선이다. 윌버포스는 남은 인생을 노예해방을 향해 또 뛰었다. 마침내 1833년 7월 노예폐지법이 제정되었다. 며칠 뒤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연로한 윌버포스가 감사한 표정으로 임종했다.
미국은 영국을 좇아 1808년 노예무역금지법을 만들었지만, 노예제도 폐지에는 시간이 걸렸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은 1862년에 이르러서다. 유럽이 일찌감치 포기한 노예제도를 너무 오래 붙잡는 바람에 내란을 겪던 때였다. 기득권에 막혀 개혁이 늦어진 데서 생긴 비극이었다.
1807년 영국에서 노예무역금지법이 제정되었다. 노예해방의 서곡이었다. 인류 역사는 파란만장한 흐름을 보여준다. 상식으로 이해가 불가능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비인간적 행태를 얼마든지 목격하게 되는 고통스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모두가 절망하는 상항에서도 그의 섭리는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된다.
구제 불능의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의 방향을 바꾸시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처참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독교 핍박으로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을 무참하게 맹수의 밥이 되게 하고 검투사들의 칼날에 희생되는 광경을 보면서 환호하는 군중을 뚫고 한 수도사가 나타나 야만적인 이 광경을 꾸짖었다. 그리고 그는 그 칼날에 희생 되었다. 그러자 군중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드디어 이 야만적인 광경은 사라지게 되었다. 세계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노아 홍수와 같은 세계적 규모의 사건을 통하여서만 역사하시지 않는다. 가장 사소한 것 같은 사건과 사람을 통하여서 역사하신다. 오천 명의 군중의 식사 문제를 국가적인 구제 활동을 통하여 해결하지 않으셨다.
지극히 작은 한 아이의 도시락 하나를 통하여 해결하셨다. 거대한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조직이나 사건이 아니라 주어진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따르는 각자의 결단이 중요하다. 윌버 포스 한 사람의 회심이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시작이 되었던 것을 주시해야 한다.
인류 구원 역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희생에 의하여 된 것이며 그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도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수십억의 인원이 한꺼번에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한 사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윌버 포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