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65:16,  살전5:16-18)

축복은 받는 것이며 행복은 하는 것이다 – 행복을 받고 축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은 받아야 하고 행복은 해야 하는 것이다. 받아야 하는 것이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받는 것은 주시는 분에게 구해야 하고 해야하는 것은 명령하신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마7:7-11에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리라,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복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께 구하라 – 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복의 출처는 좋은 환경 조건 상황 조건 좋은 형편이 아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복을 출처가 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주어지지 않으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환경과 상황에서도 축복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였다.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복의 출발이다 – 창12:2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을 따라 가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가느냐 상황을 따라 가느냐 – 말씀을 따르는 것과 상황을 따르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유는 말씀을 상징적 교훈적 의미로 자기 논리에 따라 정의하기 때문에 자기 논리로 해석되는 현실 상황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이다. 번번히 상황과 형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신앙생활이 형식화 하고 종교화 되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인 것 같다해도 말씀대로 할 때 실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하게 된다. 

상황을 따라 가는 사람의 함정 – 상황을 따라가는 사람은 상황의 상태가 기도의 제목이며 관심의 전부이며 목적 그 자체가 된다. 그의 기도와 믿음은 거짓 기도 거짓 믿음으로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잠28:9에서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상황을 따라가는 이유는 기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번번히 속는 이유다. 내 판단에 가능성이 있었으나 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며 그 기도도 듣지 않으신다.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명령대로 하는 것이다 –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대로 해야 되는 것이다. 받아야 하는 것이 있고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뻐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도 감사도 마찬가지다. 조건에 관계없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해야 한다. 명령은 상황과 환경 조건과 상관없이 실행해야한다.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 빌립보에서 실신하도록 모진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던져진 바울과 실라는 깊은 밤 중에 감옥이 떠나갈 정도로 찬양하며 기도했다. 저절로 나온 모습이 아니다.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다. 좌절과 낙심과 두려움 앞에 굴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쁨으로 감사로 기도로 이겨내어 오히려 기쁨으로 고난을 굴복시키고 원망을 감사로 굴복시키고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정복해야 한다. 

행복은 하나님에 대한 대접이다 –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숙명적 존재인 인간이 상황과 환경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에 앞서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대접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체가 매우 불손하고 배은망덕한 마음 자세이다. 그의 은혜는 평생토록 아니 영원토록 특별한 은혜이다. 어떠한 환난과 절망도 그 은혜를 약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나님과 그의 은혜는 불변의 지고한 존귀성을 가진다. 

교만의 치명성 – 인간의 존재와 삶을 완전 무효화하고 흉악한 죄악의 삶이 되게 하는 죄의 형태가 있다. 그것은 교만이다. 선악과 먹은 결과가 교만이다. 하나님처럼 된 존재가 선악과 먹은 인간이다. 죄의 뿌리 원죄가 교만이다. 교만은 사단의 본질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던 존재가 사단이다. 사단이 초지일관 인간의 마음에 교만을 심는 이유가 멸망 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스스로 깨닫기 어렵고 회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