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3:1-7)

인생은 필연 관계에 의하여 존재한다 – 모든 인생의 공통점이 있다. 생존은 시작된 증거이고 시작은 끝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입장에 있다. 기본적으로 필연 관계는 절대적인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를 비롯하여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결정과 책임, 파종과 추수, 먼저와 나중, 위와 아래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이 다가온다. 필연 관계는 불필요한 관계가 아니라 필수적인 관계다. 이 관계를 통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각자의 운명과 공동 운명 – 필연 관계는 인생이 불가향력적인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출생이 원인이 되어 부모와 자녀의 필연관계가 형성되고 구원이 원인이 되어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내가 아버지와 아들의 필연적 관계가 형성된다. 교회 생활을 시작하면 목자와 양의 관계가 형성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실제 교회 생활에서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하여 궁극적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무시하면 영적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다. 

상하(위와 아래) 관계 –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인생의 관계는 상하 관계로서 명령(말씀)을 주시고 명령(말씀)을 받는 관계에 있다. 자녀는 부모의 말씀을 받고 양은 목자의 말씀을 받는 관계에서 말씀을 받는 자세의 중요성이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정적 동기는 말씀의 타당성 합리성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내용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문제에 달려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의견보다 의견을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명령(결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 – 명령권 자(결정권)의 책임이 막중하다. 명령과 결정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명령과 결정에 대하여 불순종하는 경우에는 명령권자에게 책임이 없고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순종의 중요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의 목적이 우리의 구원과 축복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뜻대로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빈대이다. 

일의 필연 – 나오미와 룻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추수기 였다. 떠났다 돌아온 두 사람은 추수의 계절이라 해도 수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삭 줍기의 계획을 세우고 일단 부딪혀 보는 계획을 가지고 무작정 추수하는 밭을 찾아갔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양한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계획을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일을 결정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이 중요하다.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이어야 한다. 

나오미의 결정 기준 – 유다 땅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나오미는 모압 땅으로 이주를 결정하게 된다. 상황과 환경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인간적 판단에 따라 결정한 결과는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 허락을 확인했다면 과연 하나님이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 세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과연 허락하셨을까 아닐 것이다.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 당연히 물어 봤어야 했다. 인간적 판단으로 충분히 유리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룻의 결정 기준 –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가겠다는 결심은 시어머니의 재산이 많아서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시어머니는 완전히 빈곤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평생 시모를 모시는 결정은 큰 모험이며 큰 희생을 각오한 결정인 것이다. 세상 인심을 기준으로 한다면 절대 택할 기준이 아니다. 인간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그 뜻을 근거로 결단한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가는 결단,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 있게 된다. 

상황 판단에 따른 결정 – 나오미는 상황의 상태를 참고하여 고향을 떠나고 모압 땅으로 이주하게 된 동기가 상황의 어려움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일 것이다. 유리한 상황으로 옮기는 것이 상식적으로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황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인간적 기대일 뿐이다. 생명을 지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어쩔 수 없이 상황 때문에 믿음을 갖지 못했다면 어쩔 수없이 구원은 불가능하다. 무엇으로도 참된 축복과 행복을 대신할 수 없다. 

시작한 이상 필연적으로 끝이 다가온다 – 그 끝이 천국인가 지옥인가 축복인가 저주인가 승리인가 패배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유한한 시간 안에 있던 인생에게 필연적으로 시한이 종료되는 시점이 온다. 유한한 시간이 끝나면 무한한 시간이 시작된다. 100년을 살아도 유한한 시간이다. 그 이후 영원한 시간이 시작된다. 그 영원은 천국에서의 영원이 있고 지옥에서의 영원이 있다. 유한한 시간의 중요성은 무한한 시간 때문이다. 유한한 시간 동안 무한한 시간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