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과정에 있어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시점이 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천성’에 이르는 유일한 문, ‘좁은 문’ 앞에 도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구원에 이르는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좁은 문을 통과할 것이다. 좁은 문 매우 가까이에 있는 그들은 금방이라도 그 문을 들어 설 것 같지만 무슨 일인지 선뜻 들어서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좁은 문 가까이 있으면서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짜 크리스챤’은 아니지만 ‘진짜 크리스챤’이 아닌 ‘거의 크리스챤’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다. 죄를 각성한 죄인은 비로서 짊어지고 있는 것이 죄의 짐인 것을 알게 되고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려면 좁은 문으로 도망해야 한다는 전도자의 말을 따라 빛을 따라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길에는 방해와 함정들이 있다. ‘고집’이라는 멸망의 도시로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기도 하고 ‘변덕쟁이’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변덕쟁이 때문에 ‘절망의 수렁’에 빠져 엉망이 되고 만다. 영적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이다. 동행하던 변덕쟁이는 낙심하여 멸망의 도시로 돌아가고 ‘도움’을 만나 언덕을 겨우 올라간다. 왕 되신 그 분께서 늪에 다리를 놓아 주셔서 늪을 빠져 나온 크리스챤에게 이 늪은 왕의 영토의 각지에서 수많은 교훈을 운반해와 쏟아 부어도 메워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절망의 수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과정은 필수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순례자 ‘믿음’을 만나 그 수렁에 빠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좁은 문에 도착한 크리스챤은 그 문을 “두 서너 차례” “쾅쾅” 두드려야 했다. 누구냐고 문지기가 묻는 질문에 영생을 얻으려고 가는 불쌍한 죄인 이라고 대답하자 문지기는 문을 열어준다. 좁은 문 안에 들어온 크리스챤에게 구원의 좁은 길이 나타난다. 하지만 죄의 짐은 여전히 등에 달라붙어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보혈 외에는 죄책과 죄의 짐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은 ‘해석자의 집’에서 설명을 듣고 구원의 언덕에 올라 십자가와 빈 무덤을 바라 본 후에야 그의 등에서 짐이 글러가는 일을 경험한다. 크리스챤이 떠난 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함께 떠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탄식한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길을 떠나 그 늪을 만나게 된다. 늪은 더욱 깊어지고 흉한 상태에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지 않고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 가르친 삯군들의 잘못 때문이었다.
더욱 더러워진 늪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늪에 빠지지 않고 통과 했다. 여러 번 거의 빠질 뻔했는데도 무사히 건넜다. 그리스도께 오는 모든 죄인들은 동일한 크기의 낙심과 절망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좁은 문에 도달한 그의 아내는 문을 두드리고 또 계속 두드린다. 그러자 큰 개가 짖기 시작한다. ‘개는 기도에 훼방꾼이 되는 사탄’이다. 이처럼 사탄은 각성된 죄인의 두려움을 더욱 악화시켜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도록 한다.
많은 순례자들이 사탄의 짖는 소리에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다시 문을 두드린다. 더욱 힘차게 계속 두드리니 문지기가 그녀를 알아보고 자녀와 함께 즉시 안으로 들여 보낸다. 그러나 불쌍하게 문밖에서 떨면서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을 문지기가 문을 열어 들여 보낸다. 깜짝 놀라는 그들에게 “어떠한 경로로 왔든지 나는 나를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들도 먼저번 크리스챤 처럼 좁은 문 꼭대기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전에도 제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지만 지금 제 마음은 전보다 열 배는 더 기쁘고 상쾌합니다” 그들의 먼저 경험은 회심에서의 기쁨이었으며 지금 경험은 회심 이후 구원을 확신하는 순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좁은 문에 들어섰느냐 하는 것이다.
순례 과정의 마지막에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담을 뛰어넘어 들어온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결국 멸망의 길로 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좁은 문 가까이 왔으나 좁은 문 앞에서 주저하게 만드는 여러 사건들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탄은 마지막 순간까지 좁은 문 앞에서까지 극렬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좁은 문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마지막 좁은 문 앞에서 더욱 방해한다.
좁은 문 앞에 와서 다 왔다는 안도감에 머물게 하는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거의 크리스챤을 진짜 크리스챤으로 알게 하는 것이다. All Most는 Complete이 아니라 Incomplete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를 미완성이 아니라 완성으로 믿는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나도 미완성은 미완성이다. 교회 다닌 횟수와 날짜가 아무리 많아도 좁은 문 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있으면 문 밖에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