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9:16-26)
천국과 지옥의 실체 – 눅16장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 낙원에 갔고 부자는 죽어 음부(지옥)에 갔다. 부자는 음부(지옥)에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일생을 살고 일생이 끝나면 영생이 기다린다. 천국에서 영생하고 지옥에서도 영생한다. 육신은 끝나도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 천국도 영원하지만 지옥은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이며 잠시가 아닌 영구적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 – 인생은 고의든 실수든 불가피하게 많은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인생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이 해결하신다. 인간 중에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인생 문제 가운데서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며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 내세에 관한 문제다. 육신의 기간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영생의 문제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다.
영생의 문제 해결 방법 – 청년은 영생 문제 해결방법으로 행위적 구원 방식으로 질문한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행위적 구원은 율법 시대 사람에게는 당연한 구원방식이다. 일반 모든 종교 역시 행위 구원을 말한다. 선한 행위는 선한 행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 대한 답으로 계명 중에 대인 계명을 말씀하신다.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예수님의 요구(지시) – 대상에 따라 예수님의 요구와 지시가 다르다. 부자 청년에게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자에게 나눠 주리고 하시고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나라고 하시고 수가성 여인에게는 남편을 데려 오라고 하신다. 사렙다 여인에게는 한움쿰 가루를 가져 오라 하신다. 결정적 시험 항목이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다. 결정적 시험을 하시는 것이다. 부자 청년은 재산이 심히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
행위 구원의 한계 –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가 인간의 죄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목적에 있다. 죄의 해결이 아니라 인간이죄 앞에 통곡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계명의 결론을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행위를 요구하셨다.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부자 청년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 – (부자의 정의)부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자에 대한 정의가 중요하다. 경제적 의미가 아니다. 재산의 수준이 어느 수준 이상이냐 이하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권의 문제다. 내가 그 재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냐 아니냐를 말한다. 소유권을 가진 주인이 부지이다. 소유권이 없는 종은 부자가 아니다.
구원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 주인은 자기소유, 자기 기준, 자기 원칙에 의해 모든 일을 자기가 처리한다. 종은 자기 몸 조차 주인의 소유다. 주인의 기준, 주인의 원칙으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당연히 주인의 칭찬이 있다. 반대로 종이 주인 행세를 하며 임의로 주인의 소유를 처리하고 종의 기준과 원칙으로 처리하면 그 종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주인의 책망과 처벌이 있게 된다. 구원은 주인이 나 자신에서 주님으로 Ownership이 넘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다 –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서 많은 사람이 증언한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였는데 왜 모른다고 하시나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너희 뜻대로 했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이 주의 뜻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그 뜻이 내 안에 있음은 주님의 의견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말한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 천국에 들어갈 때 주님의 이름을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데리고 가셔야 한다. 포도나무 비유가 바로 주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을 말한다. 목자 되신 주님이 나를 푸른 초장으로 시냇가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함께 가야 생명 길을 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천국 문 앞에 가서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주님이 나를 천국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마24:40-41) (살전4:17)
